미국의 대표적 자유보수 논객인 벤 사피로가 계급 문제를 강조한 마르크스주의가 그동안 인류사에 끼쳤던 패악을 재조명하면서,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의 아류로서 새로이 인종과 성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는 신좌파의 행태를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5월 2일(현지 시각), 미국의 우파 지성지인 내셔널리뷰(National Review)는
‘칼 마르크스, 당신은 틀렸어!(Karl Marx, You Were Wrong)’ 제하 벤 샤피로(Ben Shapiro)의 기명 칼럼을 게재했다.
벤 샤피로의 이번 칼럼은 최근 뉴욕타임스가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한국 경희대 철학과에 재직 중인 제이슨 바커(Jason Barker) 교수의 칼 마르크스 찬양 칼럼을 게재한데 따른 반론 성격으로서 작성된 것이다.
벤 샤피로는 “지난 주에는 역사적으로 가장 악랄한 한 인간의 탄생일이 끼어있었다”며 “여기서 그 악랄한 인간은 바로 칼 마르크스(Karl Marx)다”라고 일갈하며 칼럼을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피비린내 나는 유산(Marx’s bloody legacy)’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무려 일 억명의 인민들을 학살했고, 또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북한 등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천 만명의 인민들을 감금했다”면서 “서구 좌파들은 이를 목도하고서도 여전히 마르크스 찬양을 멈출 줄 모른다”고 개탄했다.
벤 샤피로는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록 베를린 장벽의 악몽을 잘 기억하고 있는 대중들 탓에 공산주의 이론을 정면으로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고 하는 새로운 테마를 내세워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벤 샤피로는 “(제이슨 바커 교수의 칼럼 제목과 달리) 도대체 마르크스가 무엇이 옳았단 말인가?(What, exactly, was Marx right about?)”라고 반문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경제이론부터가 한 마디로 헛소리(Tripe)인데가 그의 역사 해석 방법론까지도 모조리 다 틀렸다”고 단언했다. 즉, 역사가 헤겔 철학의 변증법을 통해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향해서 진보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도 이제는 명백한 오류로 다 밝혀졌다는 것.
반면에 제이슨 바커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서 마르크스의 역사 해석 방법론이 여전히 옳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이슨 바커는 “전 세계의 빼앗긴 자들은 봉기해서 그들을 억압하는 체제를 변혁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까지 바꿔낸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역시 옳았다”고 역설했다.
벤 샤피로는 제이슨 바커가 인종(race)과 성(sex)에 기반한 피해자 외양(guise)을 갖게된 집단이야말로 마르크스적 변증법의 정점(apotheosis)에 서있다는 식으로 얘기한다고 지적했다. 제이슨 바커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계급 착취 이론의 역학(dynamic)에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었다. 바로 ‘인종(Racial)’과 ‘성적 억압(sexual oppression)’이 계급 투쟁의 한 요소로 첨가되었다는 것이다. ‘사회 정의 변혁 운동(Social justice movements)’인 ‘더 블랙 라이브스 메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와 ‘#미투(#MeToo, 나도 성희롱을 당했다)’ 운동은 마르크스에게 암묵적 빚을 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진리(eternal truths)'가 바로 이들 운동의 비타협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모든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며, 이런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적 진보의 근본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벤 샤피로는 제이슨 바커의 주장을 평가절하했다. 제이슨 바커의 논변은 마르크스주의의 본산인 프랑크푸르트(Frankfurt School Marxists) 학파로서, 신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논변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이미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주류 문화의 그림자 속에서 기거하며, 권력 구조에 희생되어온 인간상들 . . . 이제 그들은 주류 문화에 속하는 ‘기득권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에서의 가장 숭고한 성취에 저항하면서, 반항, 증오, 그리고 반역적 피해자로서의 기쁨을 자기 자신들의 음악으로 정의하며 희생자 자신의 자아를 지배자에 대항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벤 샤피로는 “이제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노동자 계급(proletariat: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혁명’ 대신에 ‘피해자(victims)의 혁명’을 추구한다”면서 “이 피해자의 혁명을 꿈꾸는 다양한 억압적 집단들은 세상이 본인들에게 적대적인 시스템으로 뒤덮여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 소득 격차를 통한 연대보다는, 이른바 상호교차성 테마(intersectional themes: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인 젠더, 인종, 사회 계급 등의 다양한 측면을 상호교차적으로 적용하여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를 통한 연대가 보다 손쉽다
”며 “돈 없는 자들끼리의 어떤 심각한 형제애보다는, 차라리 영속적 유대관계로서의 순수한 부족주의가 낫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후예들이 부족주의를 활용해 새로운 국가 전복 세력 조련에 열을 올리는 이유”라고 꼬집었다.(관련기사 :
집단주의의 변화: 마르크스주의에서 인종/성별 간 투쟁으로)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새로운 국가 체제가 새로운 형태의 인류를 창조한다고 설파한다. 제이슨 바커는 “사회 변혁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식의 주문이 만연하지만, 현실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데로 사회 구조가 우리를 이미 규정해놓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변혁할 힘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이슨 바커에 따르면 사회 체제를 변혁하거나 혹은 재설계를 완성했을 때만이 우리는 자본을 통한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단단히 뭉쳐서 자본주의을 붕괴시킬 때만이 그때부터 인간의 참다운 아름다움이 본격적으로 만개한다는 것이 제이슨 바커의 주장이다.
그러나 벤 샤피로는 “제이슨 바커의 파괴가 곧 건설이다라는 식의 명제는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신봉자들이 비록 스탈린주의자(Stalinists), 마오이스트(Maoists), 카스트로 정권, 또는 북한 전체주의 정권과의 단절(disown)을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모든 독재체제들 역시 시작은 마르크스의 이상을 실현한다고 착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고 일갈했다.
벤 샤피로는 “인간 본성의 새로운 지평은 없다. 즉, 인간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체제 하에서만 완전하게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유일한 체제는 인간의 불완전한 본성을 인정하는 선에서 그 이기적인 결함을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 만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라고 단언했다.
벤 샤피로는 “마르크스는 총체적으로 틀렸다(No, Marx wasn’t right)”며 “하지만 좌파들은 마르크스를 절대 포기 못한다. 왜? 마르크스는 전통 종교(유대-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인간상이 아닌, 전혀 다른 대안적 인간상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통 종교에서 제시하는 인간상은, 완전한 백지 상태로서의 ‘빈 서판(blank slate)’이 아니며, 구원만을 바라야 하는 천사도 아니다. 이 인간상에서는 우리 인간는 흠결 많은 피조물인 동시에 위대한 업적을 일궈내는 것도가능한 존재다.
(관련기사 : 좌파주의는 바로 대학 교수의 아편이다)
그러나 인간이 구원으로서의 위대한 업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인의 실존적 차원의 변화는 많은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서구 전통 종교가 제시해온 인간상이다.
그러나,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하는 출발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통 종교가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식의 구원을 얘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마르크스는 국가 사회 체제 변혁을 통한 구원만을 얘기한다. 개인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인의 실존적 변화보다 사회 변혁이 훨씬 더 쉬운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To change ourselves on an individual level is hard work. To spout about the evils of society — that’s certainly easy enough)”
벤 샤피로는 개인에게는 별 다른 사항을 요구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의 바로 이런 요소가 마치 아편과도 같이 작용하여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 인간들을 선동, 현혹하고 있다고 암시하면서 칼럼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