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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김소영 앵커, SNS에 ‘박근혜 정부=전체주의 독재정권’으로 비유한 듯한 글 올려

1월 페이스북에 조지오웰의 ‘1984’ 언급하며 “선거가 반드시 민의의 반영을 가져올 수 없다면...” 정부를 전체주의 독재권력으로 비유한 듯

불법폭력 시위로 여론의 비난을 사고 있는 민중총궐기를 옹호하는 듯한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려 논란이 된 MBC ‘뉴스투데이’ 김소영 앵커가 지난 1월에는 작가 조지오웰의 ‘1984’를 언급하며 현 정부를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빅 브라더’로 묘사한 듯한 글을 올려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김 앵커는 글에서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날 자신이 조지오웰의 ‘1984’를 펼쳐들었다면서, 현 정부가 민의가 반영되지 않은 선거를 통해 탄생했고, 현재 삼권분립이 무너져 있다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한 주장을 펼쳤다.

이 같은 대목은 야당과 좌파진영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선 부정선거’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김 앵커는 지난 1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에서, 조지 오웰의 ‘1984’의 ‘빅 브라더’ 사회 속에서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가는 개인을 언급하며 “소설 속 개인은 결국 파멸하며,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저널리즘이 투영된 작품이었으나 다행히 오늘날 현실을 비켜감에 안도하며, 문학성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다만 헌법의 삼권 분립과 상호견제가 사라지고, 선거가 반드시 민의의 반영을 가져올 수 없다면, 오늘날 이땅, aka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감정 이입은 충분할 듯 싶다.”고 썼다.

이 대목은 현 정부를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속 개인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빅 브라더’ ‘감시자’ ‘독재권력’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 앵커는 또한 “끝없이 흘러나오는 뉴스 특보에선 당장이라도 북괴가 쳐들어올 듯 칼을 빼어 든다.”며 “말리려던 사람도 주춤하게 하는 '안보'야 말로 전가의보도이며, 가상의 '전쟁'이야 말로 그들의 '평화'를 보장한다. 민간인 사찰과 여론조작도 '안보'가 되고, 정리해고자도 참담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의 피해자들도 '반동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 역시, 박근혜 정부가 안보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면서, 민간인 사찰, 여론조작 등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정리해고자도 참담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의 피해자들도 반동분자가 될 수 있다’고 적은 대목은, 해고노동자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정부가 이들을 안보를 이유로 ‘반동분자’로 몰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김 앵커는 아울러 “콩을 팥이라 말해도 딴죽거는 언론이 드문 시대. 정부탓, 사회탓, 남탓 말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하지만, 평생 안 되는 시대임을 말하지 않는다.”며 “혹 누군가 용기를 낼라치면 생계를 걸어야 한다. 어느새 껍데기와 본질은 뒤바뀐다. 권력은 권력 자체를 목적한다.”고 적었다.

이와 함께, 마지막 부분에선 크게 흥행한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하며 “'합리성이 결여된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오스카 와일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일뿐 이라고 할 수도 있다.”면서 “추억과 추함은 구분하면 된다. 언론이라면, 건강한 시민사회라면 충분히 지향해야 한다고 믿고, 또 반성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미디어내일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이하 김소영 앵커 SNS 글 전문-


8090이 어느덧 '복고'라니 낯설지만 <토토가> 열풍에, 개비 담배도 나왔다. 작년 헌정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지던 날 펼쳐든 조지 오웰의 1984. 어릴적보다 현실감 있다. 여러모로 복고적이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이 그려낸 암울한 미래 84년은 실체 없으나 불사의 존재 '빅브라더'를 정점으로, 절대권력의 '당'이 지배하는 사회. 핵심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무엇이든 듣고 감시하는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의 통제 속에 살아가는 개인.

저자 스스로 '투병 중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을 이렇게까지 어둡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설 속 개인은 결국 파멸하며,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저널리즘이 투영된 작품이었으나 다행히 오늘날 현실을 비켜감에 안도하며, 문학성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헌법의 삼권 분립과 상호견제가 사라지고, 선거가 반드시 민의의 반영을 가져올 수 없다면, 오늘날 이땅, aka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감정 이입은 충분할 듯 싶다.

'전쟁은 평화'

끝없이 흘러나오는 뉴스 특보에선 당장이라도 북괴가 쳐들어올 듯 칼을 빼어 든다. 말리려던 사람도 주춤하게 하는 '안보'야 말로 전가의보도이며, 가상의 '전쟁'이야 말로 그들의 '평화'를 보장한다. 민간인 사찰과 여론조작도 '안보'가 되고, 정리해고자도 참담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의 피해자들도 '반동분자'가 될 수 있다.

'자유는 예속'

다분히 전체주의적 경제 성장을 이룬 덕에, 이만큼 살게 된 건 과거의 독재덕이라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는 불가피론은 오늘도 건재하다. 가정을 물고 늘어지는 건 지루한 논의가 될테지만, 적어도 나라 사랑과 독재 사랑은 관련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혼용되니, 아이참 헷갈린다. 거친 산업화의 터널을 건너온 부모세대와 그 '좋아졌다는' 세상에서 여전히 박탈을 겪는 자식들은 이간된다. 실상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닌 권력이야말로 진정 자유롭다.

'무지는 힘'

가계 부채 천조 시대. 태어나 교육, 취업, 주택, 은퇴와 노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피로 사회. 피폐한 일상의 악순환 속에서 '왜 이렇지?' 생각할 시간도, 공론을 위한 여유도 점차 사라진다. 그저 팔자를 원망할지어다.
콩을 팥이라 말해도 딴죽거는 언론이 드문 시대. 정부탓, 사회탓, 남탓 말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하지만, 평생 안 되는 시대임을 말하지 않는다. 혹 누군가 용기를 낼라치면 생계를 걸어야 한다. 어느새 껍데기와 본질은 뒤바뀐다. 권력은 권력 자체를 목적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말이 오갔다. '합리성이 결여된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오스카 와일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일뿐 이라고 할 수도 있다. 추억과 추함은 구분하면 된다. 언론이라면, 건강한 시민사회라면 충분히 지향해야 한다고 믿고, 또 반성한다.



※ 김 아나운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도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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