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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해온 문화비평가이자 과의연 특보인 서범석님의 시리즈 한의학 비판 글인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입니다. 서범석님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필치에 더해 한의학 문제를 바라보는 보다 풍부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귀한 원고를 투고해주신 서범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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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검토한 몇몇 예에서 침∙뜸이 효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모두 플라시보 효과 혹은 체내진통물질 촉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아본 바 있다. 이 부분에서 혹자는 어찌되었건 침∙뜸이 효과가 있기는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이건 아니건, 침∙뜸 시술 행위가 실제로 체내진통물질의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모든 플라시보 효과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현재보다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이 점을 잘 파고들어 2006년도에 출간된 후 전 세계 수천만 독자들을 정신감염시킨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시크릿(Secret)’이라는 책이다.
 



호주의 방송 작가인 론다 번(Rhonda Byrne)이 집필한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끌어당김의 법칙(유인력의 법칙, Law Of Attraction)’으로 요약된다. 이 ‘유인력의 법칙’이란,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은 ‘자신이 끌어당긴 것이지 남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 아니므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좋은 상황을 간절히 상상하고, 확신하고, 긍정함으로써 이를 자신에게 끌어당길 수 있다는 사이비 법칙이다.

한 인물이 이렇게 긍정과 자기확신으로 넘치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에 주파수를 맞춤으로써 우주적 존재의 힘까지 빌릴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이런 컨셉트의 책들은 100년도 전부터 반복 출판되어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크게 히트하자 ‘긍정적 사고방식’의 위력을 맹종하는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꿈꾸는 다락방' 등의 책을 쓴 이지성이라는 저자가 이 분야의 주도적 '제1종 정신몽매자'로 활약 중이다.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나 다단계 회사, 보험 회사 등에 들어가면 맨 처음 실시하는 것이 바로 이런 ‘비밀’류의 정신감염 교육이다. 나이아가라처럼 쏟아지는 긍정적인 생각과 상품에 대한 강한 자기확신으로 고객을 '감동', 아니 ‘감염’시키면 당신은 병아리 따위가 아닌 매로 살 수 있다고 친절히 깨우쳐 준다. 일단 이런 사고방식에 몽매자 수준으로 감염되면, 영업 하나만으로 누구나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90%가 넘는 사람들이 지인들에게 민폐나 끼치다 1년 내에 손 털고 나오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른 시장참가자들에 대한 유인책이 됨은 물론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간절하게 긍정했기에 성공한 것이고, 떠난 자들은 열심히 긍정하기 않았기에 실패했다는 식의 해석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아래 사진은 올 초 어느 음식점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고 찍어 둔 것이다. 잘 음미해 보면, 그 의미가 '론다 번'이나 '이지성'이 설파하는 것보다는 훨씬 호소력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노라는 생각을 겁나게, 일체의 부정적 생각도 없이, 꾸준히 한다고 모두 그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자기 확신은 기본이거니와,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책들에는 ‘그 이상의 것’에 관해서는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긍정하라고만 시키고 그 긍정이 실패했을 경우엔 초긍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막무가내식 논리이다. 확실한 것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우연히 대통령이 되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 이것이 사실이며 현실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 유행하던 영화, ‘수퍼맨’에 강하게 정신감염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확신이 지나쳤던 나머지, 어느 날 이 친구가 정말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3층에서 뛰어내려 버렸다. 요즘으로 치자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퀴디치’를 하겠답시고 빗자루를 타고 떨어진 격이다. 그는 과연 하늘을 날았을까. 중력의 법칙만 확인했을 뿐이다. ‘우주에서 가장 강한 법칙’이라는 ‘유인력의 법칙(Law Of Attraction)’이 사실은 ‘중력의 법칙(Law Of Gravity)’ 보다도 약한 것이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는 것에 그쳤지만, 애먼 전교생들은 교장 선생님 훈시를 지겹도록 들어야 했다. 모름지기 소망과 실망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법이니, 기원은 하되 섣부른 기대는 하지 말지어다.

우리가 가난, 기아, 질병, 사고 등의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그것을 간절히 원해서 끌어당겼기 때문일까. 아니다. 자신의 대뇌피질에서 흘러나온 긍정적 생각만으로 주변 매트릭스를 재구성할 수 있다면 세상에 굶어 죽거나 병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유인력의 법칙’과 반대되는 예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예들은 ‘긍정적 자기확신’의 효력에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밀’류의 긍정적 사고방식은 비참한 현실에 대한 진통제와, 장밋빛 미래에 대한 마취제를 선사해준다는 점에서 ‘유사 종교’, ‘성공학계의 플라시보 효과’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고대중국의학의 ‘플라시보 효과’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믿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의학이라고 봐주기 어렵다. 그것은 이미 종교이다. 우리는 ‘스테로이드 연고’가 염증감소 및 면역억제 기능이 있다는 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믿지 않아도 항염증, 면역억제 효과는 나타난다. 우리는 인슐린 주사가 혈당을 정상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믿지 않아도 혈액 속 포도당 양을 정상화시킨다. 우리는 파킨슨병 치료제가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믿지 않아도 도파민 분비량을 증가시킨다. 우리는 항생제 주사가 수술 후 감염증을 막아줄 것이라는 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믿지 않아도 감염균을 살상한다. 우리는 피임약이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게 해줄 것이라는 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믿지 않아도 피임이 된다.

이를 바꿔 말하면, 긍정적 자기 확신이나 플라시보 효과만으로는 염증 감소, 혈당 정상화, 도파민 분비 정상화, 감염 방지, 피임 등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기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

2011년 초, MBC 이상호 기자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구당 침·뜸은 인권과 복지의 미래형 아젠다>, 2011년 2월 2일, 미디어오늘

“고발 기자는 현실을 넘어선 대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외환위기 사태 이후 자본이 공동체 중심을 차지하면서 대안이 상실됐고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됐다. 그러던 중 침∙뜸에 대해 취재하게 됐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간부들이 국내 최고의 병원인 삼성의료원을 두고도 침∙뜸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자체로 큰 충격이었다. 침∙뜸은 원가 100원도 안 되는 치료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돈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략)

현재 거론되는 복지 의제들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가치 회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반값 집값 등은 자본의 논리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안들이다. 침∙뜸 보급과 뜸 시술 자율화법 추진 운동도 이것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침∙뜸은 자본의 논리에 균열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큰 충격을 가해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무기라고 생각한다. 본질적 인권은 건강 인권 아닌가. 자기가 원하는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대단히 중요한 인권의 문제이다. 지금은 산적한 정치적 의제 때문에 관심이 덜 하지만 침∙뜸은 인권과 복지의 미래형 아젠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상호 기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GoBal 뉴스'를 즐겨들으며 그가 우리 사회에서 해왔던 취재들도 존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가 침·뜸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정의감이 그의 판단력을 앞서는 것 같다. 언제 한 번 직접 만나 취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의 주장을 들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어째서 침∙뜸이 인권과 복지의 미래형 아젠다가 된다는 것일까? 이것이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인지, 단순히 원가가 100원도 안 될 정도로 경제적이기 때문인지, 침∙뜸과 인권∙복지간의 연결 고리가 당최 불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 간부들이 침∙뜸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침∙뜸 치료의 효과가 객관적으로 입증되기라도 했다는 뜻일까? 이는 교황청에 팔만대장경 해석의 적정성을 묻는 격이라 코털만큼도 참고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건희 회장, 삼성 간부들, 이상호 기자처럼 침∙뜸에 ‘정신감염’된 이들이 경락∙경혈교 감염자(혹은 몽매자)가 되든, 기독교 감염자(혹은 몽매자)가 되든, 불교 감염자(혹은 몽매자)가 되든 그것은 개인적 자유이지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주관적 가치에 경도된 나머지 이를 정당화하여 사회 일반의 객관적 사실로 확산감염시키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안수기도에서 플라시보 효과 좀 봤다고 이를 정규 치료법으로 삼자고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자본 편중으로 묶인 매듭은 결국 징세 시스템 개선 등의 자본 분산으로 풀어야지 침∙뜸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마디로, 고대중국의학은 인권이나 복지, 더더군다나 미래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와 상관이 있을 것이다. 가령, 누군가 허리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침∙뜸을 뜨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통증이 사실은 사소한 허리 통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중대한 병의 전조 증상이었다. 그런데도 실제 병이 깊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를 침∙뜸으로 자가 치료나 하다가 시기를 놓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침∙뜸 몽매자들이 질 것인가. 아마도 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 이런 예에 부합하는 한 비극적인 죽음이 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살 적의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지 외할머니께서 넓적다리 통증을 호소하셨다. 밑도 끝도 없이 화장실에 갔다 온 이후로 넓적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건강하신 편이었지만, 무릎 관절염으로 평소 거동이 불편하신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또 다른 퇴행 현상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외할머니는 뜸과 부항 신봉자였기에 효도랍시고 그것들만 열심히 떠드렸을 뿐이다. 이틀 뒤 넓적다리가 검게 변색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병원에 모시고 갔다. 갔더니 대퇴부 골절이었다.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골절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내출혈이 발생했다는 것을 본인조차 모르고 방치해 둔 것이었다. 결과는 혹독했다. 골절 부위 염증과 욕창 등의 합병증세를 막지 못하고 한달 내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플라시보가 인간 질병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연구자들에 의해서 조사된 바 있다. 그 한계 역시 조사된 바 있다. 그런데도 대다수 질병을 고쳐 제세구민(濟世救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침∙뜸 몽매자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또, 면역계가 허약해서가 아니고 과잉 반응해서 발생하는 알레르기 질환을 탕약 처방이나 침∙뜸 시술로 ‘면역력을 증강시켜’ 치료해 주겠다거나, 현대적 돌림병인 신종 플루를 침∙뜸으로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렇듯 침∙뜸의 효과와 한계는 명확한 데, 고대중국의학 몽매자들은 효과의 무제한성만 말할 뿐, 그 한계에 대해서는 전혀 짚어주지 않고 있으니 이 어찌 몽매주의라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끝)


저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시리즈 / 서범석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특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 : 왜 '한의학'을 '고대중국의학'이라 불러야 옳은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2) : 도올 조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4)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②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5) : 뜸사랑 체험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6) : 세계 보건기구(WHO)의 경혈 위치 표준화 작업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7) :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8) : 컨디셔닝, 플라시보, 노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9) : 고대중국문명의 플라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0) : 고대중국의학의 현대적 적응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1) : 고대중국의학의 효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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