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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승리? 아니면 일본의 승리?

일본 스모(씨름) 업계가 몽골 출신 챔피언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사진설명 :ⓒphotovoyage

일본 스모(씨름) 업계가 몽골 출신 챔피언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 35년 동안 ‘난공불락’의 신화로 기록되었던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화창조’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몽골인은 바로 ‘아사쇼오류우’(朝靑龍, 본명 ‘돌골스렌 다과돌지’ 26세)이다.

몽골 씨름대회 협회장을 지낸 아버지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형은 현재 몽골 씨름대회 챔피언에 올라있다. 그야말로 ‘씨름의 피’가 온 가족에게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제가 각각 몽골과 일본에서 챔피언에 올라있는 것도 기네스북 감에 해당한다.

‘아사쇼오류우’가 대기록을 깰 것으로 예상하는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는 챔피언인 ‘요코즈나(橫綱)’에 등극한 이후 22개 대회에서 16번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부상으로 2번 결장한 것을 빼면 우승 확률이 무려 80%에 이른다. 31회 우승으로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다이호오’(大鵬)가 ‘요코즈나’ 등극 후 58개 대회에서 29회 우승한 것과 비교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알 수 있다. 역대 랭킹 2위 ‘치요노후지’(千代乃富士, 59개 대회에서 29회), 3위 ‘기타노우미’(北乃湖, 63개 대회에서 22회), 4위 ‘다카노하나’(貴乃花, 49개 대회에서 15회)의 우승 확률은 ‘아사쇼오류우’보다 크게 떨어진다. ‘아사쇼오류우’는 ‘요코즈나’ 등극 3년만에 벌써 역대 최다우승 5위에 랭크되어있다.

‘아사쇼오류우’는 이미 두 가지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인미답의 7회 연속 우승(종전은 ‘다이호오’의 6회 연속 우승)과 연간 84승(종전은 ‘기타노우미’의 81승)의 금자탑을 이미 쌓아올렸다. ‘아사쇼오류우’를 제외, 앞서 언급한 4명의 선수들의 평균 ‘요코즈나’ 재위기간은 57개 대회이며, 이들이 평균 결장한 대회 수가 10개 대회 정도임을 감안할 때 산술적으로 아사쇼오류우는 향후 35개 대회에 출전하여 이 중 28회 우승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미 18회 우승을 했음을 감안할 때 46회라는 계산이 나온다. 노쇠해질수록 우승 확률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이호오’의 32회 우승을 깨는 것이 그리 버겁게 생각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아사쇼오류우’를 경이롭게 바라보는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즉, ‘다이호오’에게는 ‘가시와도’(柏戶), ‘치요노후지’에게는 ‘다까노사또’(隆乃里), ‘다까노하나’에게는 ‘아께보노’(曙)라는 당대의 라이벌 등이 있어 경쟁심과 투쟁심을 고취시킨 반면, ‘아사쇼오류’에게는 그와같은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상 동(東)과 서(西)에 2명 포진시키도록 되어있는 ‘요코즈나’ 자리를 3년째 혼자서 지켜오고 있다. 변변한 경쟁자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우승한 것이기에 일본인들은 더욱 더 경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일부 스모 팬들은 이를 가리켜 ‘몽골인들이 일본 정복의 이루지 못한 꿈을 아사쇼오류우를 통해 달성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징기스칸을 앞세워 천하를 통일한 몽골인들이 지난 13세기말 4차례의 일본 원정에서 모두 태풍(일본인들은 神風 ‘가미까제’라고 부른다)을 만나 좌절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볼 때 과연 몽골인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지금 몽골 씨름 업계는 우수 선수들의 일본진출 러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일본 스모 대회 ‘마꾸노우찌’(幕內, 1부리그에 해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몽골 선수들은 줄잡아 7명이나 된다. 이 중 ‘하쿠호오’(白鵬)는 ‘요코즈나’ 바로 밑 서열인 ‘오오제끼’(大關)에 올라있으며, ‘요코즈나’ 등극이 아쉽게 좌절된 바 있으며, 현재 ‘아사쇼오류우’의 유일한 라이벌로 자리매김해있는 상태다. 몽골인들끼리 우승컵을 다투는 것이 이제 일본인들에게도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준수한 외모, 깔끔한 매너, 거기에 일본 스모 업계 성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유명 모델 ‘미야자와 리에’와의 결혼으로도 잘 알려진 ‘다까노하나’의 은퇴 이후 일본 스모 업계는 극심한 흥행부진에 빠지게 되었다. 성급한 스포츠 전문가들은 ‘더 이상 유망한 어린 선수들을 선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론’까지 등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스모 업계가 눈을 돌린 것은 바로 몽골이었다. 씨름을 즐기는 민족성에 징기스칸의 후예라는 ‘신비감’까지 더해져 일본인들은 ‘투쟁심 넘치고, 야성미로 가득 찬’ 몽골 젊은이들에게 차츰 매료되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 스모 업계의 ‘회심의 카드’는 정확히 시류에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로 인해 스모가 다시 흥행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자 유망주들이 앞다투어 스모 업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야말로 ‘몽골 카드’로 선순환 기류를 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 스모 업계의 시도는 비단 최근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치요노후지’, ‘다까노사또’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잇따라 은퇴 혹은 부진을 겪게 되자 발 빠르게 움직여 ‘고니시끼’(小錦, 290킬로그램), ‘아케보노’, ‘무사시마루’(武藏丸) 등 미국출신 거한들을 잇달아 영입하여 또 한 번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은 바 있다. ‘다까노하나’의 혜성 같은 등장도 이와 같은 미국출신 거한들이 훌륭한 조연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150킬로그램에 불과한 ‘다까노하나’가 200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거한들을 쓰러뜨리는 맛에 매료되어 스모에 열중하게 된 일본인들이 많다.

현재, 일본 스모 업계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들은 비단 몽골인들 뿐만이 아니다. 1부 리그에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총 42명 중 13명에 이른다. 국가만 따지더라도 한국, 러시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그루지아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최고등급에 해당하는 ‘요코즈나’와 ‘오오제끼’만 따지면 일본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이미 3 : 3으로 정확히 50%씩을 분점하고 있다. 일견 보기에는 자신들의 안방을 내준 것 같지만 실상은 외국인들을 이용하여 일본인들의 ‘국기’(國技)인 스모를 더욱 부흥 발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고 있는 선수들은 외국인들이지만 그것이 깔려있는 마당과 정신세계는 여전히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상 일본의 승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요코즈나’인 ‘아사쇼오류우’는 우승 인터뷰에서 유창한 일본어로 답변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입는 모든 의상은 일본인들의 전통 의상이며, 그가 연출하는 모든 퍼포먼스는 일본인들의 전통이 깃든 의식이다. 먹는 음식은 물론, 잠자리와 훈련방법까지 모두 철저히 일본식임은 물론이다. 결국, 일본은 자신들의 국기에 대한 문호를 전 세계로 개방함으로써 도리어 일본문화의 전 세계적 확산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무서운 민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 씨름도 최근 들어 극심한 부진과 분열에 휩싸여있다. 일전에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를 만났을 때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한국도 씨름의 문호를 전 세계를 향해 개방하면 일본 스모 보다 훨씬 더 흥행하고 발전할 텐데...”하며 말이다. ‘아사쇼오류우’가 ‘요코즈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려 2년이 걸린데 반해 한국 민속씨름은 단번에 천하장사에 오를 수 있지 않나. 그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다이내미즘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이다. 그런 가운데 이미 일본에게 선수를 빼앗겨 좋은 인재들이 전부 일본으로만 몰려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홍만과 이태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나마 남아있던 우수 선수들도 잇따라 K-1 무대를 노크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태권도가 올림픽 경기에서 제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갖고 살아가는 반면, 일본인들은 유도가 올림픽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스모 업계의 노력이야말로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필자에게는 ‘아사쇼오류우’의 전성기가 몽골의 전성기가 아닌 일본의 전성기로 다가온다. 그래서 몽골은 경기에서는 이기고도 역사와 전통에서 진 것이며, 일본은 경기에서는 지고도 역사와 전통에서는 이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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