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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양심을 짓밟는 촛불시위대

이게 너희가 말하는 민주주의냐

서울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한 청년이 등장했다. 그가 들고 있는 피켓에는 이런 글씨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광우병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1인 시위를 한 것은 찬반의 유무를 떠나서 상당히 용기있는 일이다. 더구나 그가 서 있는 곳은 촛불시위대가 모이는 청계광장 부근이 아닌가.

처음에 그를 격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격한 촛불 시위를 멈춰야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촛불 시위자들이 모이면서 그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개XX." 욕설이 나오기 시작하며, 그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이 쏟아졌다. 경찰이 왔음에도 그들의 폭언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 청년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고,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비이성적인 태도로 대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가 물대포라도 들고,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방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시위자들을 폭행이라도 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몰아부치도록 허락하였단 말인가. 그토록 과잉진압을 문제삼고, 독재는 물러가라,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그저 피켓 든 한 사람에게 욕설을 퍼풋고 주위를 험악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였다는 말인가?

참으로 두렵지 않은가? 독재자 한 사람은 몰아내 버리면 그만이지만, 선동하는 다수의 대중은 무슨 수로 진정시킨단 말인가. 그는 촛불 시위대들의 머슴이 아니다. 그들과 똑같은 한 사람의 시민이요, 이 나라의 주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 뿐인데, 무엇이 그리도 불만이었는지, 그들은 그를 포함한 소수의 생각마저 꺾어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들을 보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원한다면 시민들이 대통령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낼 수 있는 국가라고 생각했으나, 그를 억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민주주의라는 열매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의견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의견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 다른 의견이 소수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극소수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다수의 편에 서서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그 청년에게 욕설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그가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그렇게 억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그 소수는 억압받고 사라지며, 다수는 폭주하게 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다. 진보계열의 학자들이 보수세력을 비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독일과 나치를 위해 철저하게 남과 다른 나라을 깔아뭉갠 인물. 그러나 그가 절대 다수의 독일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그런 행태를 자행한 것은 모르는 이가 의외로 많다. 절대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소수를 밀어내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옳은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언제든지 자기 자신도 다수와 대중에에게서 떨어져 나온 소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잘못 흘러가는 것을 바로잡고 다른 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 용기가 있다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위해 그냥 모른 척 비켜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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