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의 그림자' 아래 베트남 급성장의 주역
(하노이=연합뉴스) 권쾌현 특파원 = 오는 14일부터 사흘간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는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베트남 권력서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상의 최고권력자다.
베트남은 당서기장이 공산당을, 주석이 대외적인 국가 원수를, 총리가 행정을 나누어 담당하고 있지만 권력서열에서는 당서기장이 1위, 주석이 2위, 총리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 득 마잉 서기장은 주석과 총리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1년 제9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당 서기장으로 발탁된데 이어 지난해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연임, 연평균 8%에 이르는 베트남의 급성장을 진두지휘하고있는 주역을 담당해왔다.
온화한 성품과 말을 아끼는 성격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아 일부에서는 실질적인 권력이 있느냐는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지만 지난해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부패 스캔들로 인한 퇴진 압력을 무마시키고 멋지게 연임에 성공한 것으로 보아 파워가 만만치 않음을 과시했다.
특히 자신을 제외한 나이 많은 원로들을 모두 퇴진시키고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는가 하면 당에 자본주의 개념을 도입하는 등 새시대에 맞춰 당의 체질을 개선하는 과감함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마잉 서기장은 아직도 '호찌민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소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호찌민 주석의 향수에 젖은 베트남인들은 사실의 진위와는 관계없이 이를 믿고 싶어하며 실제로 많은 베트남인들은 이 소문을 사실로 믿고 있다.
소문은 호찌민 주석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숨어들어와 공산주의 활동을 할 때 농 득 마잉이 태어난 박깐성에서 머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추종자들은 마잉의 인상에서 호찌민 주석의 인상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잉 서기장은 이러한 소문의 덕인지 71년 러시아 임업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호찌민의 또 다른 이름인 응웬 아이 꾹 공산당학교를 입학해 로열 당원의 수업을 받았다.
이후 박깐성의 옛이름인 박타이성에서 인민위원장과 당 서기를 지낸 그는 86년당 중앙집행위원이 됐고 91년 7차대회에서 첫 정치국원이 되는 급성장을 보였다.
베트남의 87%를 차지하는 베트족(낑족)이 아닌 소수 따이족으로 그가 국회의장을 거쳐 2001년 당서기장이 되고 이번에 당서기장을 연임까지 하게 된 데에는 호 주석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01년 9차 전당대회 직전 막판까지 당서기장을 고사했던 점으로 볼 때 권력에 대한 욕구와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는 다소 떨어지지만 욕심이 적고 성격이 온화하며 합리적이라는 것이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과거 6년간 베트남을 연평균 8%에 육박하는 고도성장으로 이끈 것은 그의 역량을 보여 준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kh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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