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구순기자]"퀄컴 얘기만 나오면 한국언론과 국민들은 모두 삐딱한 시선으로 봐요. 좋은 측면은 아예 생각지도 않아요. 로열티 얘기나 칩 얘기도 모두 퀄컴이 나쁜다는 쪽으로만 결론이 나요." 오랫동안 한국퀄컴의 홍보를 담당해온 한 간부의 하소연이다.
기자 본인도 지난 10여년동안 IT기자를 하면서 퀄컴이 잘했다는 기사는 써 본 기억이 없다. 늘 로열티가 막대해 재주부리는 곰과 돈버는 주인이 다르다거나 로열티 계약이 불공정하다거나 하는 기사 일색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다. 지난 8일 퀄컴이 경쟁사인 브로드컴과의 소송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에 한국 휴대폰 산업이 마치 큰 암초를 만난 듯 북새통이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역시 퀄컴이 제대로 특허소송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됐다.
왜 이렇게 악연일까.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한국 휴대폰 산업과 퀄컴은 그리 나쁜 인연이 아니다. 퀄컴의 기술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휴대폰 업체들은 세계시장에서 떵떵거릴 수 있게 됐다. 물론 넘치는 로열티를 대가로 줬지만 말이다. 또 퀄컴은 한국 학생들을 미국 본사에 초청해 기술연수를 시키는 등 알게 모르게 한국의 IT산업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 문제가 뭘까. 답은 하나다. 한국의 휴대폰 산업을 퀄컴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도 퀄컴 칩이 없으면 당장 미국 휴대폰 수출길이 막힐 판인데 누구룰 탓하겠는가.
만일 독점이 아니었다면 책임도 분산됐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퀄컴칩을 대체하는 칩을 만들려는 기업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한국 휴대폰 제조사와 퀄컴의 합작 방해공작 앞에 무너졌다. 휴대폰 업체들은 "퀄컴을 자극하면 안된다"며 새로운 칩 쓰기를 꺼렸다. 퀄컴은 경쟁자를 키우는 것이 싫었던지라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2001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휴대폰 산업에 대한 퀄컴의 독점이 지켜졌다.
이제 휴대폰의 세대가 바뀌고 있다. 퀄컴 기술 일색이던 2세대에서 여러 업체들이 원천기술을 나눠갖는 3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퀄컴과 한국 휴대폰 업체들이 책임을 나눌 수 있는 대체 칩 업체가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터준다면 악연도 조금씩 인연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이구순기자 cafe9@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