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임지수기자]"이젠 담당자와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해요. 일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담당자를 제쳐두고 무조건 차장, 부장과 얘기하던 것과는 달라요. 그런 면에서 직원들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훨씬 크게 느끼게 됐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끌어 낸 가장 큰 비결은 선수 조직내 수평적 문화를 만들고 이를 통해 경쟁을 유도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국내 선수들이 선후배 간 엄격한 위계 질서 때문에 매끄러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라운드 안에서는 서로 이름만 부르도록 한 것. 선수들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같은 조치는 곧 톱니바퀴같은 탄탄한 조직력과 함께 수평적 조직의 자율성을 만들어 냈다.
SK텔레콤이 이와 비슷한 '호칭파괴'를 선언한지 8개월이 지났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본부장, 실장, 팀장 등 직책을 맡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직위 구성이 사라진 것.
SK텔레콤 홍보팀 조직도를 살펴보면 실장과 팀장 1명씩을 제외하고는 9명의 팀원 모두가 똑같은 '매니저'다. '매니저'라는 호칭은 직위와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전문지식과 책임을 가진 담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일호칭 도입으로 사실상 승진 개념도 없어졌다. 성과가 있는 직원에 대한 연봉을 높여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SK텔레콤 직원들은 이같은 호칭파괴에 대해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 과장급 매니저는 "상사가 아무리 깨인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특성만으로 수평적 조직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며 "그보다는 인프라가 갖춰줘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전 직원에게 '매니저'라는 같은 호칭을 준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매니저는 "처음에는 '매니저'라는 호칭이 낯설고 익숙치 않아 부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없다"며 "특히 일반 사원급 직원의 경우 '매니저'라는 호칭이 붙으니 전문적인 느낌도 갖고 책임감도 커졌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김혜진 홍보팀 매니저는 "예전에는 타부서와 협력할 일이 있을 때 담당자를 봐서 평사원이면 담당자를 제쳐두고 그 위의 차장이나 부장과 접촉해 일을 빨리 진행하려 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똑같은 매니저이니 담당자의 역할과 책임이 예전에 비해 커졌다"고 말했다. 팀원들이 수평적 관계 속에서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 구조가 됐다는 설명이다.
물론 모든 직원이 만족해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직원은 "시스템 개편 당시 차장이었고 개편이 없었다면 부장으로 승진했을 시기였다"며 "다른 직원과 똑같이 매니저로 불리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한 대외업무에서도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다. 한 대리급 직원은 "거래처 등에 나를 소개할 때 매니저라고 소개하면 상대방이 이전 직급은 어떻게 되냐고 묻곤 한다"며 "이럴 때는 다소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인사시스템 개혁 당시'수직적 상하관계를 부추기는 직위체계와 호칭을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바꿔 보다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던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사팀 관계자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꾀하려면 인사제도의 진화와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호칭파괴 혁신도 처음에는 일부 회의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조직문화를 이루는 핵심 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수기자 l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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