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대통령을 누구보다 존경하다보니 당연히 박근혜 의원을 존경한다는 것을 기자들이 결혼 운운 하면서 언론에 몇 번 나온 적이 있을 뿐이다." <본문중에서>
박머시땡이, 화제의 중심에서는 약간 비켜 서 있지만, 평소에 가장 궁금 했던 사람을 만났다. 혹자는 그의 지극히 일부분의 발언인 "박근혜와 결혼 하겠다" 정도만 기억하고 핏~ 하고 코웃음을 치지만 박머시땡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람이란 걸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다요기 최강인터뷰 독자 여러분께서는 다른 여타의 매체에서 보지 못한 인터뷰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뭐냐 자뻑증세냐?^^) 썰이 길어지면 인터뷰는 늘어진다. 자자, 후딱들 나를 따라오라^^ 인터뷰 시작이다!
다요기: 문을 노크하기 전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렸었는데 막상 마주 대하고 보니 안정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나이, 성별-_-;; 경력등.
허경영: 반갑다^^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6.25 사변이 난 해인 1950년 1월 1일 서울 중랑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태어났다.
다요기: 어? 너무 간단하다. 좌우명 같은 것도 소개 좀 해달라. 최강인터뷰는 아주 간단복잡(?)한 인터뷰다^^
허경영: 징기스칸의 4무(四無)가 있는데 불설무가(不說無家), 즉 가문에 대해서 묻지 말라는 것이 첫째다. 어려서 징기스칸은 아버지가 죽는 바람에 동네에서 쫓겨났다. 두 번째는 불설무학(不說無學), 즉 배우지 못한 것을 묻지 말라는 것이다. 징기스칸은 죽을 때까지 이름도 쓸 줄 몰랐다. 그러나 항상 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셋째 불설무식(不說無食), 즉 먹을 것이 없다, 가난하다고 탐하지 말라. 들쥐를 잡아먹으면서도 살았다는 것이다. 넷째 불설무적(不說無敵), 적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적은 징기스칸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이다. 징기스칸은 이 네 가지를 탐하지 말고 극복했더니 세계의 황제가 되어 있었다.
다요기: 흠-_-;; 그래서, 묻지 말라는 얘긴가? 박머시땡이는 대답할 때까지 조른다. 징키스칸은 징기스칸이고 허경영은 허경영이다. 빨랑 출생부터 성장과정 까지 말해달라! 달라! 달라! (농성버젼)^^
허경영: 하하. 졌다. 졌어. 좀 길지만 눈여겨 봐달라.
나는 출생에서부터 성장까지가 극과 극의 연속이었다. 나의 큰할아버지가 삼성 그룹의 이병철 회장에게 자금을 주어서 삼성그룹을 만들었고 나의 작은 할아버지는 LG그룹의 구인회 회장에게 최초로 자금을 투자해 LG그룹이 탄생했으며, 그 장손인 나의 아버지는 수 만 마지기의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준 뒤 사상범으로 오해를 받아 1950년 6월 22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으로 30대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 때 만삭이 된 나의 어머니 역시 만석꾼의 딸이었는데 진주에서 서울의 아버지 면회를 위해 중랑교 다리 밑에 가마니 움막 속에서 기도를 하며 서대문 형무소 면회를 다니다가 1950년 1월 1일 나를 낳으셨다. 추운 겨울 나를 낳다가 어머니는 몸이 얼어 산후병으로 나를 진주의 선친들의 고향에 데려 놓고 내가 네 살 때 돌아가셨다.
그 때 진주의 우리 집안에서는 나를 받아주지 않아 우리 아버지의 소작인 집에서 자라게 되었고 일곱 살 때부터 한문을 배우고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때 사서삼경을 다 배우고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서 수유리 화계사 이항원 스님의 양아들이 되어 야간중학을 다니며 팔만대장경을 다 배우고, 고등학교 때 광화문 내수동교회 홍근섭 목사의 아들이 되어 성경과 53가지 세계
종교 경전을 모두 독파했으며 전 세계의 108가지 사상을 모두 배웠다.
다요기: 헉~! 정말 자세하다. 고등학교까지 소개가 되었으니까 그럼 앞으로... 좋다 까짓거 쭈욱~ 소개해달라. 싸나이 갑빠가 있지 농성버젼으로 임했는데 여기서 자를 순 없잖은가? ^^
허경영: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양아들이 되었고 이회장의 소개로 박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이 되어 새마을 운동과 방송통신대학교, 반도체 산업을 최초로 건의하고 실현시켰다. 나는 법학과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철학, 신학, 생명공학 등을 전공했고 지금도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하고도 체육시험에 떨어진 일도 있었고, 좀 남겨두는 것도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 나는 학교 이름을 밝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박대통령 밑에서 10년간 정책보좌역을 하고 민주공화당 총재특보와 민주공화당 정책의장, 민주공화당 총재를 하다 15대 대통령에 출마했으며, 박대통령 서거 이후 계속해서 공화당만 고집해 오다가 이번에 열린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 당명을 다시 경제공화당으로 바꾸어 대선에 나갈 것이다.
다요기: 경제공화당이라... 기억하겠다. 눈매가 매우 시원해서 여성들이 많이 좋아할 거 같은데...^^
허경영: 내가 7살 때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고 있을 때 소죽을 끓이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시주를 하러 왔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스님께서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너는 이 집 아이가 아니구나. 너는 한문공부를 열심히 해라. 장차 대통령이 네 번이나 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중동(검은 눈동 자 두 개가 겹친 눈)의 눈을 가졌다." 고 하길래. "내가 이 집 아들이 아닌 것을 어떻게 내 눈을 보고 알 수 있으며, 중동의 눈은 또 무엇입니까." 하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내 눈은 여자가 좋아하는 눈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로부터 사랑 받는 눈이 될 것이다.
다요기: 박머시땡이도 그렇게 되길 바라며, 또 하나 허대표는 참 잘생겼다^^ 이제, 본격적으로 드가보자. 허대표가 히트시킨 발언 가운데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와 결혼하겠다는 것이 있다. 박머시땡이 다시 함 묻는다. 진심인가?
허경영: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몽고와 제일 먼저 통일을 추진할 텐데 아마 몽고 대통령의 딸과 결혼을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 때 나는 비원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할 것이니까 비원 정원에서 결혼식을 하겠지. 내가 박대통령을 누구보다 존경하다보니 당연히 박근혜 의원을 존경한다는 것을 기자들이 결혼 운운 하면서 언론에 몇 번 나온 적이 있을 뿐이다.
다요기: 앗! 그럼 사실이 아니었나? 그럴 마음이 없는 것이란 얘기? 왜냐면-_-;; 박머시땡이도 박 전 대표를 은근히-_-;;
허경영: 부시대통령 취임식 때 미국 워싱턴에 같이 갔다 온 것과 국내에서나 미국에서 여러 행사에 같이 다니고 사진 찍고 이런 것을 보고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박의원이 최고의 신부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요기: 최고의 신부감이라는데 동의한다^^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겨 확실한 안보와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는데 유엔본부를 어떻게 옮길 생각인지 듣고 싶다.
허경영: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신속히 옮기지 않으면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가듯 우리 남한의 신세가 장개석처럼 제주도로 도망가서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번에 제주도 서귀포시장이 죽은 것은 그것을 암시해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01년 1월 18일 나는 국내에서 정치인으로써는 유일하게 나 혼자만 부시대통령의 초청장을 받았고 미국에 가서 취임식 당일 저녁에 부시를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것이 그날 저녁 전 세계로 나가는 저녁뉴스에 나와 부시를 만나는 장면과 소개가 부시 취임 저녁 뉴스에 2분에 걸쳐 나옴으로써 화제가 되었고, 부시가 허경영을 차기 한국의 대통령 감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었다.
그 때 김근태, 박근혜 의원 등 국회의원이 30여명 갔는데 그들은 상하원의원들의 초청장을 가지고 가서 부시를 만나지 못한 채 뉴스에서 내가 부시를 만나는 것을 보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때 부시에게 유엔본부를 한국의 판문점으로 옮기지 않으면 한반도 3차 대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고 부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뒤 2005년 부시는 김학수 유엔 사무차장을 서울로 보내 나를 만나게 했으며 그는 나에게 유엔사무총장 출마를 제의했고 유엔보부를 판문점으로 옮기는 것을 회원 국들에게 공약으로 내세우면 당선이 보장될 것이므로 미국이 협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요기: 오오~ 흥미만땅 재미만땅이다. 얼렁얼렁 들려달라. 허대표~ 어서~
허경영: 그러나 나는 17대 대통령 선거에 나가야 되므로 사양하고 노무현 정부에게 소개를 시켜줌으로써 결국 반기문 장관이 당선되었다.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도 한국 사람이 되었고 유엔사무차장인 김학수 씨는 한국 사람이므로 부시가 도와주기로 했으므로 내가 17대 대통령이 된다면 유엔본부 판문점 이전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유엔헌장 1장 1조에는 유엔본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라는 상임 이사국에는 둘 수 없게 되어있는데도 60여 년간 미국이 가지고 있으면서 매년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전쟁비용을 사용하며 세계 각 나라와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 보니까 회원국들이 분담금을 내지 않아 골치 아프다며 부시는 유엔본부 한국 이전을 환영하였다.
우리는 북한에 주는 돈의 절반만 해도 유엔 유지비가 되며 국방비만 좀 줄여도 된다고 했더니 부시가 좋아했다. 만약 내가 2007년 대통령이 되지 못해서 유엔 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제주도가 대한민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니 이번에 제주도 서귀포시장이 바다에 빠져서 돌아간 이유는 하늘의 암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은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하늘은 남한이 북한에 의해 점령되면 제주도의 시청사가 대한민국 정부종합청사가 되고 돌아간 제주도 서귀포 시장의 집무실이 대통령 집무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중국의 청나라가 망한 뒤 북쪽은 모택동이, 남부지방은 장개석이 점령한 채 남북이 싸우다가 결국 북쪽의 모택동한테 장개석이 978만 ㎢라는 남한의 9만8천㎢의 100배나 되는 영토에서 쫓겨나 겨우 3.6㎢라는 남한의 1/3밖에 안 되는 대만섬으로 간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이대로 간다면 9만8천㎢의 국토를 빼앗기고 겨우 1848㎢의 남한 넓이보다 53배나 작은 제주도로 몇 천만 명이 피난을 가서 대한민국정부를 세워야 하는 지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엔본부를 한반도로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2007년 대선에 당선되어 신속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요기: 음... 부시가 환영했다는 얘기도 사실인 듯 하고, 암튼 오늘 박머시땡이 무쟈게 흥미진진하다^^ 허대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서 표한다면...?
허경영: 나도 22세 때 박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이 되어 새마을 운동과 방송통신 대학제도, 반도체 산업을 건의하여 박대통령과 함께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
박대통령에게 나는 도민양산(韜民養産), 즉 산업화는 기르고 민주화는 숨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대통령 역시 강력한 경제제일주의를 위해서 민주화를 뒤로 보류하기로 했던 것은 사실이다. 박대통령 역시 강력한 경제제일주의를 위해서 민주화를 뒤로 보류 하기로 했던 것도 사실이다. 박대통령은 경제성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1970년 이전의 아시아 국가들의 GNP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한국은 68불로 꼴찌였다. 그러나, 내가 새마을 운동을 만든 이후 박대통령의 강력한 경제추진으로 2006년 현재, 우리를 앞서갔던 아시아국가들을 누르고 무려 250배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GDP로 따지면 세계 11위 수준으로 우뚝 섰으니 이것은 모두 박대통령의 공이 아닐 수 없다.
다요기: 옳소! 맞소! 당연하오! 짝짝! 계속 이어주시오^^
허경영: 1995년 3월 5일 광복 50주년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역대 대통령의 평점에서 박 대통령이 68점, YS 12.5점, 전 대통령 1.4점, 노 대통령 0.3점이었다. 또한 1998년 7월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공동으로 정부수립 50주년 설문조사에서 정치 분야에서는 역사를 빛낸 인물 1위에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를 빛낸 사회 공공분야에서는 내가 만든 새마을 운동이 또한 1위를 했으며, 1999년 전국 대학생 설문조사에서 복제하고 싶은 인물에 박 대통령이 90%의 지지를 얻어 1위를 했으며 그 다음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었다.
다요기: 와~! 정말 대단한 기억력이다! 존경스럽다!!
허경영: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자음14자 모음10자로 되어 핸드폰으로도 문자를 신속히 보낼 수 있지만 중국이나 일어 등 다른 나라의 글자로는 불가능하며 글자를 칠 때도 우리보다 몇 십 배나 느린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되면 우리 한글을 유네스코에 세계의 글로 등록시켜 인터넷 시대에 세계 공용어가 되게 할 것이다. 또한 1988년 대교문화재단에서의 설문 조사에서는 역대 정치인 가운데 청빈, 도덕성을 갖춘 인물로 박정희 대통령을 1위로 뽑았다. 그 분이 유명을 달리한 지도 27년이 지났는데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절대적 추앙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박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은 어떤 향기를 남겼는가. 그들은 향기가 아니라 악취를 남기지 않았는가. 해를 볼 수 없고 비가 오면 침수되는 다세대 주택에다 반 지하를 허가한 것 하나를 보면 100가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요기: 잠깐, 샛길로 좀 빠지자^^ 도서출판 '새나라'에서 출판한 책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가 1250만부가 팔렸다는 주장이 있던데 새나라 출판사는 직접 운영하시는 건가? ^^
허경영: 새나라 출판사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어린이 소아암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어린이들의 각종 질병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재단법인 어린이 소아암 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이며 책의 수익금은 100% 어린이 소아암 재단에 기부되게 되어있다. 다만 내가 어린이 소아암 재단의 고문으로 있을 뿐이다. 책이 1250만부가 나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전 국방부장관이었던 윤성민 장관은 나와 전혀 모르는 분인데도 책을 읽고 1000여권을 서점에서 사서 5년 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다니는 것이 일과라고 했다. 그러니 일반사람들이 책을 읽고 보통 몇 십 권씩을 선물하고 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요기: 음, 조금 아픈 과거다. 15.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그야말로 아주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박머시땡이는 도전정신을 좋아하기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지만 많은 사람들은 조소를 보낼 것 같기도 하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허경영: 나는 대통령에 출마해서 KBS, MBC, SBS TV 합동토론에 나가 나에게 표를 찍지 말고 당선될 사람(김대중)에게 표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 대통령이 되려고 나온 것이 아니고 박대통령의 공화당을 내가 몇 십년간 이끌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 나왔고 다음에 대통령에 꼭 당선 가능성이 있을 때 나를 찍어달라고 함으로써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17대에는 내가 당선될 것이니 찍어달라고 할 것이다.
다요기: 약간은 긴 인터뷰다. 그렇지만 너무 재미있다. 그런데...-_-;; 이제 밥을 먹어야만 하는 시간이다. 맛있는 것좀 사달라-_-;;
허경영: 좋다. 출출하던 차에 알아서 끊어주는 센스도 있고 하하... 최강인터뷰를 보면, 이런 시간이 꼭 있더라.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2부도 기대해 주세요" 이런 멘트도 박머시땡이가 할 시간이 아닌가?
다요기: 헉! 허대표가 먼저 해버렸다-_-;; 그렇지만 다요기 독자님들^^ 2부도 기대해 주세요. (귓속말) 허대표 어서~ 밥 먹으러 가요 ㅠㅠ
허경영, 다요기: 하하~
(허경영의 이야기속으로 1부 끝)
다요기 최강인터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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