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일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 시한을 정한 이라크 전쟁비용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이라크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1천240억달러의 전쟁비용을 추가로 마련하려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 승리선언 4주년째인 이날 플로리다주의 미군 중부사령부를 방문하고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이라크 주둔 미군을 오는 10월 1일부터 철수를 시작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비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TV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지난 6월 줄기세포 연구자금 확대법안 이후 이번이 두번째이며 지난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이후 2천552번째다.
이로써 전비법안은 다시 의회로 반송돼 10일내에 재의결 과정을 거치게 되며 양원에서 참석 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부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효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비법안은 지난 주 의결과정에 상원 찬성 51표, 반대 46표, 하원 찬성 218표, 반대 208표 등 적은 표차로 가결돼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효화하고 법률로 확정할 수 있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상원 67표, 하원 290표)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전비법안은 사실상 폐기된 것.
대부분 공화당 의원들이 이라크 미군의 철수시기를 못박는데 대해 반대해왔고, 부시 대통령도 오래 전부터 거부권을 시사, 이같은 결과는 일찍부터 예견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주도하는 미 의회가 법안통과를 강행한 것은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 26일 잇따라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한 민주당이 이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법안이 백악관으로 송달되는 것을 승인하는 등록서명식을 가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법안이 사실상 폐기됨에 따라 백악관과 의회는 대체법안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전비법안 마련이 계속 늦어질 경우 전장에 있는 미군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2일 백악관으로 양당 의회지도자를 초청해 전비법안 마련에 협조를 구할 계획이다. 이 자리엔 민주당 소속인 펠로시 하원의장, 리드 상원 원내대표 등도 참석한다.
민주당도 체면을 유지하는 타협안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라크 정부에게 더 많은 책임과 기준을 제시하고 이라크 정부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미군을 철수시킨다는 식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백지수표는 주지 않으면서 전쟁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민주당이 또다시 미군 철수시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법안에 포함시킬 경우 부시 대통령의 `제2의 거부권'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민주당의 고민이 있다.
부시 대통령도 법률안 거부권만 믿고 자신의 입장을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라크상황이 좀처럼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가 국내 반전여론도 만만치 않다.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이라크가 자주국방 능력을 갖추기 전에 미군의 철군시한을 정하는 것은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등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의 타협안에 가세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현명한 접점 찾기가 주목된다.
(워싱턴=연합뉴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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