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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죽어가는 아이가 살려낸 시청률

휴머니즘을 가장한 질병의 시청률 도구화


아이는 자신과 살갗이 닿은 모든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리는 줄 알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집을 나온다. 그 좋아하는 놀이동산에 생전 처음 놀러가서도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같이 간 동네 ‘삼촌’이 제 친아비인 줄도 모르면서, 자신이 시한부 생명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에이즈에 걸렸다. 엄마는 미혼모이고, 같이 사는 증조할아버지는 중증 치매다. 이쯤 되면 무슨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세상에 이런 일이>의 아프리카 편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이들 삼대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 어느 작은 섬 ‘푸른도’다.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여덟 살 ‘봄이’네 가족의 희귀한 인생유전이 MBC 수목 드라마 <고맙습니다>(극본 이경희, 연출 이재동)의 기둥 줄거리다.

극 중 봄이(서신애 분)는 불행히도 수혈 중에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부모의 ‘불장난’으로 태어난 이 아이는, 어른들의 원죄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만다. 봄이를 시한부 인생으로 만든 장본인인 여의사는, 그 업보 때문인지 췌장암으로 요절한다. 희귀한 우연의 반복이다.
그 여의사의 연인이던 솜씨 좋은 의사 아저씨 기서(장혁 분)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푸른도’까지 오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봄이 엄마 영신(공효진 분)과 봄이의 사랑을 동시에 받게 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이, 특히 아픈 아이에 약하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휴먼 다큐멘터리도 아픈 아이가 주인공일 경우 화제작이 된다. <고맙습니다> 또한 봄이의 불행과 고통을 전면에 내세우며 수목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중매체 속의 아픈 아이들은 거의 날개만 없지 천사의 현신들이다. 아픈 아이는 여느 철학자 못잖은 심오한 대사들을 쏟아내며 어른스럽게 부모를 타이르고 위로한다. 아픈 아이는 부모를 울리고 울리다 마침내는 전국의 시청자를 울보로 만든다.

가정의 달이 되면 이런 영화들이 꼭 나오기 마련이다. 2005년의 <안녕, 형아>나 개봉을 앞둔 <눈부신 날에>는 아이가 주인공인데 그 아이들은 시한부 인생이다.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깨닫는 행복의 절정에서 이 아이들은 홀연히 ‘천사’가 된다. 건강할 때 살아 있을 때 사랑해 주지 못한 못난 부모는 오직 통한의 눈물로 부모의 도리를 다한다.

사실 <고맙습니다>는 박신양․서신애 주연의 영화 <눈부신 날에>를 브라운관으로 옮겨온 아류작이다.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아홉 살짜리 여배우 서신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들이다. 두 편 모두에서 아비 없는 자식으로 태어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서신애의 연기는 단 몇 초 만에 관객을 무장해제 시킨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아이의 안타까운 하루하루가 시청자를 TV 앞에 앉게 한다. 1천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보도와 “다시는 이런 여배우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박신양의 칭찬이 과장이 아님을, 서신애는 <고맙습니다>의 봄이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시한부 사생아의 아버지 찾기 혹은 만들기 과정은 그 자체로 토픽감이다. 설정이 너무 특이해 리얼리티가 끼어들 틈이 없다. 요즘 드라마 속에서 또 하나의 천사로 각광 받는 치매 노인까지 합세해, 봄이와 증조할아버지 ‘미스타 리’(신구 분)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지만, 사실 그들의 명연기만 빛날 뿐이다.

치매 노인과 에이즈에 걸린 증손녀가 연상시키는 비참한 현실은 온데간데없다, 그들은 병을 앓음으로써 ‘천사’가 되었고 어느덧 판타스틱한 감동의 주인공이 됐다. ‘진한 가족애’라는 설정을 위한 어여쁜 마스코트가 된 것이다. 이들의 활약에 따라 시청률은 날로 올라가니 MBC와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면 이제 웬만한 병으로는 약발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독하고 무지막지한 설정 속에서 아이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야기에만 한 줄기 감동과 눈물을 보일 만큼, 가족애는 메마른 감정이 돼버린 것일까?

<고맙습니다>를 지켜보는 소감은 그래서 씁쓸한 비애를 남긴다. 에이즈라는 초강수로도 모자라 치매 할아버지까지 동원된 <고맙습니다>는, 휴머니즘을 가장해 아이와 질병을 도구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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