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된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진행중인 `방코델타아시아(BDA) 송금 협상'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북한이 전형적인 '몽니작전'을 구사하는 만큼 향후 지속될 북핵협상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확실히 할 것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국과 미국의 외교가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주요 당국자들은 현재의 교착국면이 이어져 결국 `60일 이행시한(4월14일)'을 넘기더라도 무리하게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5일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보면 BDA 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요구수위가 갈수록 높아졌음을 알 수있다"면서 "여기서 북한에 밀려 타협안을 제시할 경우 앞으로 협상의 고비고비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당초 'BDA 합법자금은 풀어달라'는 요구에서 지난 1월 베를린 합의 이후에는 `전액을 손에 쥐어달라'는 것으로, 그리고 3월19일 `인도적 사업 등에 쓰기로 한다'는 전제로 BDA 자금 '전액반환'을 미측이 발표한 이후에는 `해외계좌로 돈을 송금해달라'는 것으로 요구 수위를 높여왔다.
`불법' 낙인이 찍힌 북한돈을 경유시켜줄 은행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보름넘도록 협상국면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의 태도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 당국자는 "`60일 이행시한'인 14일을 앞두고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시간은 북한편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측은 베이징 협상에서 북한측에 국제금융체제의 실상을 설명하고 북한의 달러위조와 밀수가 국제금융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면서 적정한 선에서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측은 북한 자금을 받아들이는 은행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한다는 서약을 하거나 2천500만달러의 송금과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한다는 등 여러 안을 제시하면서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측이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국의 자존심을 꺽으려할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측이 요구하는 미 재무부의 BDA 제재 번복이나 미 재무부의 불법행위 단속 완화 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다만 북한이 현재의 비타협적인 자세에서 탈피하거나 중재역을 맡은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도 금융가에서 주로 행해지는 우회적인 송금방안 등 `성의'를 보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6자회담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BDA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정치적 결단에 의해 법집행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안"이라면서 "북한의 불법행위 사례 등을 감안하면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BDA의 북한 계좌 52개 가운데 불법행위에 연루된 계좌는 17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북한과 미국간 합의의 취지는 합법 자금은 계좌주인에게 돌려주고 불법 자금은 북한이 인도주의적 용도로 쓰게 한다는 것이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게다가 북한 계좌주인의 내역을 살펴보면 북한이 얼마나 국제금융거래를 등한시했는지를 알 수있다고 이 소식통은 강조했다.
북한 계좌의 소유주에는 조선무역은행, 단천상업은행 등 20여개 은행과 조광무역 등 11개 무역회사, 개인 9명 등이 포함돼있다.
그런데 북한은 계좌주 대부분의 신원을 BDA에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움에 BDA로선 돈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후문이다. 특히 사망한 박자병 전 조광무역 총지배인의 명의로 돼 있는 계좌의 경우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상당수가 가.차명으로 돼있거나 사망한 박 전 총지배인이 거래내역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소식통은 "2.13 합의 이행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차피 협상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고 북한의 협상전술이 노출된 만큼 원칙을 지키면서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중재역을 맡은 중국이 모종의 제안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평양행 등 새로운 변수가 남아있는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황별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있다.
(서울=연합뉴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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