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방송공정성과 거리가 먼 특별다수제

공정성과 상관없는 특별다수제는 언론노조 기득권 강화 위한 꼼수일 뿐


35년 동안 2500원에 묶여 있던 KBS 수신료를 이제는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KBS 수신료 인상은 어렵기만 하다. 수신료를 올리는 게 정치문제가 돼 있기 때문이다. KBS 수신료를 인상하는 전제조건인 광고 축소가 종편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들이 한사코 반대한다. 또 수신료 인상을 기회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이들이 공정성 운운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장치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동의할 수 없다고 버틴다. 공영방송의 공정성 논란은 전·현 정부 때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역대 어떤 정권에서도 공정성 논란은 있어왔다. 방송이라고 늘 모두를 만족시켜왔던 건 아니다.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해외 선진국 공영방송사들조차도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일각에서 도입만 하면 마치 공정성이 보장될 것처럼 주장하는 특별다수제(사장 임명시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를 실시하는 나라에서도 공정성에 대한 이견과 논란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별다수제’ 외국과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방송공정성은 자로 재듯 규정할 수 없는 상대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다. 다만 국민 다수의 상식에 비춰 그 상식을 반영할 항목들을 만들어 방송법에 규정해놓았을 뿐이다. 그 항목들조차 해석이 서로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공정성이 다르고 네가 생각하는 공정성이 다르다. 다만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해줘야 한다는 식의 합의 정도만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합의에서조차 ‘어떻게 보도하는 게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냐’ 는 방법론에 있어 또 차이가 난다. 방송공정성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게 어쩌면 정확한 얘기다. 방송공정성이란 게 명확한 규정도 없고, 또 그것이 이상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한다면 결국 국민이 만들어준 정치적 틀에 맞추는 게 그나마 합리적인 방법이다. 국민이 투표로 만들어준 여야 구도에 따라 만들어진 공영방송사 지배구조에 따라 공영방송사 사장을 임명하고 그에 따라 공영방송이 운영되는 게 순리라는 얘기다.

야권의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와 언론노조가 특별다수제 타령을 하는 건 그런 점에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여야 이사를 반반으로 나누자는 주장은 차라리 솔직하기나 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상 특별다수제는 여당 뜻대로 사장을 임명하는 일을 막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KBS 여야 이사가 7대 4에 MBC 감독기구 방송문화진흥회가 6대 3 구도로, 여당 측 단독처리가 가능하도록 돼 있는 구조를 야당 이사 1명 이상의 찬성표를 얻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 이 특별다수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학자는 독일이나 일본 등의 경우처럼 외국 선진국들의 공영방송사가 특별다수제나 그 비슷한 제도로 사장을 선임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런 제도를 채택하면 외국의 사례처럼 공정성이 보장돼 공영방송이 잘 굴러갈 것처럼 주장한다. 필자와 같은 일개 논객에 불과한 사람이 언론학자의 주장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쉽게 한다는 건 납득하기가 어렵다.

공정성 담보와 상관없는 특별다수제는 언론노조 기득권 강화 장치, 폐기처분해야

우리의 정치제도와 역사적 경험이 독일과 일본, 영국과 같은가. 우리 국민의 언론관이 그들 국민과 같은가. 일부 언론학자들 주장처럼 여야 입김에서 자유롭게 하겠다고 또 기구를 만들고 인원을 늘리고 줄이고 별수를 써봐야 우리 현실에서는 인원수와 기구 이름만 다를 뿐 양쪽으로 쩍 갈라지는 진영논리만 심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의식과 정치수준이 달라지지 않는 한 외국의 어떤 선진사례를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공정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또 공정한 방송이란 것 자체가 이상에 불과한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 안에서 최대한 국민 다수를 만족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길 뿐이다. 특별다수제는 그런 민의를 반영하기보다 왜곡시키는 작위적인 제도이고, 특별다수제와 함께 보도국장책임제, 혹은 보도본부장 신임 투표제와 같은 것들은 그저 언론노조가 자신들 입맛대로 보도를 끌고 가려는 장치에 불과하다. 특별다수제란 1차 견제장치와 보도국장책임제와 같은 2차 3차의 장치로 노조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욕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언론노조와 그들의 요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일부 언론학자들이 강조하는 특별다수제나 기타 그들이 주장하는 제도들은 실은 공정성 실현과는 별 상관이 없다. 언론노조가 주장하는 것들이 공정한 장치라고 누가 권위를 부여해준 것도 아니다. 국민은 언론노조가 자신들 철밥통을 지키고 공영방송을 마음대로 농락할 권리를 준 적이 없다. 특히 계급주의적 의식과 목표를 가진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주장하는 공정성이 정말로 공정한 것이라고 믿는 국민도 많지 않다. 국회가 민의를 왜곡한 선진화법으로 야당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혀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처럼 특별다수제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허락하는 사장을 임명하도록 하는 특별다수제는 공영방송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싸움에 몰두하고 사사건건 대립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야당이 특별다수제를 고집하는 것도 어리석다. 집권은 영영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특별다수제는 공영방송을 망치는 개악일 뿐이다. 언론노조 권력만 키우는 특별다수제 주장은 쓰레기통에 폐기처분해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