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사실상 경질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신임 방통위원장에 현직 판사인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전격 발탁했다.
최 내정자는 서울 태생에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지적재산권 관련 재판을 주로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내정자가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2010년 전국교직원노조가 조합원 명단 수집을 금지해 달라며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부분은 주목할 부분이다.
방통위원장은 통상 언론계나 통신업계 출신의 인사가 맡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친박 핵심 인사인 이경재 위원장의 연임 대신 박 대통령이 예상 밖 인사를 한 것에 대해 언론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언론은 최 내정자를 발탁한 이유에 대해 정치 논리나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방통위를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정보·통신(ICT)은 박 대통령이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우는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로서, 방통위원장이 규제 개혁 등을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지 못하면 창조경제 정책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현 이경재 위원장 체제에선 방통위가 야당의 정치적 반대에 가로막혀 할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대통령이 ‘법과 원칙’대로 야당의 공세를 뚫을 인물로 육사 출신 방통위원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반면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는 사안에 대해 설득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정치적 감각도 필요한 자리가 방통위원장인데 법과 규제만 강조하다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발전이나 방송 공익성 등이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언론노조 기관지 미디어오늘을 비롯해 친야 매체들은 이경재 현 방통위원장의 경질 이유를 놓고 대체적으로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친야 매체들은 ▲ 이 위원장의 ‘종편 탈락’ 발언 등에 대한 종편의 견제 ▲ 이 위원장의 ‘KBS 윤리강령 위배’ 발언으로 인한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 ▲ 청와대나 새누리당과의 노선 갈등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실례로 이 위원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유사보도 채널 비판 보도자료 발표 이후 유사보도 논란의 당사자인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나도 뉴스쇼 애청자”라며 “CBS 제재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MBC 사장 선임 문제와 관련해선 작년 4월 경 언론 등을 통해 “가능하면 정부나 정권 장악과정에 개입했던 분들이 안됐으면 좋겠고, 가급적 내부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과 언론노조 측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이른바 해직언론인 복직에 관해서도 “개인적으로 저같이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동정을 금할 수 없다”며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KBS 수신료 현실화에 대해서도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국 본인의 주관에 따른 돌출 발언은 하면서도 정작 새누리당이 밀어붙이는 정책에는 추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국회 통과가 무산된 단말기 유통진흥법과 관련해서도 미묘한 갈등이 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관련 업체 로비가 있어서 그런지 진행이 잘 안 된다”고 말했고, 이는 삼성전자를 지칭한 것으로 분석됐다. 통신사 불법 보조금과 관련해선 영업정지 남발 등의 책임 문제와 연결 짓는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지난 달 직접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스마트폰 가격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몇 배씩 차이가 나고, 새벽에 수백 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질책 발언도 경질 배경을 둘러싼 한 예로 제시됐다.
육사출신의 방통위원장이 새로 내정됨에 따라 방통위의 정책 추진력은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야당 추천 방통위원 김재홍 교수(열린우리당 의원 출신)가 “조중동과 싸우러 방통위에 들어간다”며 이전 야당 방통위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여 투쟁을 공식화 한만큼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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