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수신료 현실화안이 야당 측 반대에도 30년 이상 제자리에 묶인 수신료를 정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는 가운데 KBS 야당 추천 이사들이 이번에는 새해 KBS 예산안 심사를 보이콧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인 한진만 이사는 지난 주 야당 추천 김주언 이사와 만나 예산안 심사와 관련해 만나 논의했지만, 야당 추천 이사들은 주요 국장 사후평가제 등 자신들의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는 한 예산 심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요구하는 보도국장, 제작국장 등 주요 국장 사후평가제는 야당 측 이사들과 언론노조 등이 공정보도와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논리를 앞세우지만 이 제도는 사실상 노조의 방송장악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애초 여당 추천 이사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야당 측 이사들은 구체적으로 제 1,2노조와 이사회, 경영진의 4자 합의를 통해 주요 국장에 대한 평가제를 시행하고 평가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 즉각 인사반영(해임)하는 내용을 요구했고, 여당 측 이사들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만 이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4자 합의로 한 국장평가제를 우리가 다 수용했다. 그럼에도 야당 추천 이사들이 국장 사후평가제에서 미달한 국장에 대해서는 일주일 안에 해임하는 안을 받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 이유로 야당 이사들이 예산안 심사를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이사는 “개인이 잘못했을 경우 정직, 감봉 등 징계를 줄 순 있다. 구성원 투표에 의해 국장평가제를 한다면 그것은 직위해제 밖에 없다. 그런데 꼭 해임을 넣어야 한다고 하니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지난 주 김주언 이사와 만나, 예산안은 수신료와 다르니까 야당 이사들도 잘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김 이사도 의논해 보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당분간 참여하지 않겠다고 연락 받은 게 다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 추천 김주언 이사는 “수신료 문제는 우리가 분명히 반대 입장이고, 예산안 문제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23일로 예정된 예산안 심사 소위에는 야당 추천 이사들이 불참할 것이라며 “수신료 문제와 상관없이 예산안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며 “예산안 처리가 잘못됐으면 우리가 내부에 들어가 이야기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밖에서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또 수신료 문제와 별도로 예산안 심사와 처리가 KBS 이사회의 주요 업무로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무슨 문제가 있나?”라며 “예산안 심의를 연말까지 해야 한다지만 내년 초에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올해 예산안도 올해 초에 했다. 문제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KBS 경영진 “예산에 대한 이사님들의 성실한 심의가 국민을 위한 것, 돌아와 달라” 호소
한편, 야당 추천 이사들이 예산안 심사안을 보이콧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KBS는 23일 ‘경영진이 드리는 글’을 내고 “한국방송이 2014년 한해 살림살이에 대한 그림을 일부 이사님들의 불참으로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며 야당 추천 이사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KBS는 “이사님들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예산은 KBS가 1년간 수입과 지출을 미리 셈하여 정하는 계획으로 매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는 운영계획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라며 “예산에 대한 이사님들의 성실한 심의야 말로 국민들이 내주시는 2,500원 수신료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업들을 담아내는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올 해 공사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친 토탈 리뷰를 통해 700여억원의 예산을 삭감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지만, 여전히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며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적자구조가 내년에도 크게 개선 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의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제 매체간 경쟁과 이해관계의 대립은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수신료 현실화도 아직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위기극복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을 어렵게 심의하고 있다”며 “그 동안 이사회 한 차례, 예산소위 여덟 차례 등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예산(안) 심의 절차를 밟아 왔지만 이사님들의 지혜가 더 많이 모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KBS는 이와 함께 “방송법에서 이사회를 KBS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둔 것은 공영 방송의 발전을 위해 국민을 대신해서 주어진 권한을 성실하게 행사하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 이사님들의 자리로 돌아와 달라. 다가오는 2014년을 KBS임직원들과 함께 준비하고 시작하는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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