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화 밀 발견으로 삼국시대에 밀 재배 확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귀한 먹을거리로 인식
해방후 미국 잉여농산물 수입으로 수요증가
현재 자급률은 0.3%, 최근 생산확대 움직임
(서울=연합뉴스) 이돈관 편집위원 = 한반도인의 밀(小麥) 재배는 2천여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평남 대동군 미림리에서 발견된 기원전 200-100년경의 밀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경북 경주의 반월성터와 충남 부여읍 부소산의 백제 군창지에서도 당시 신라와 백제에 밀이 재배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탄화(炭化) 밀 등이 발견됐다. 아무리 연대를 낮춰잡아도 삼국시대에는 본격적인 밀 농사가 지어지고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중국을 통해 전래됐을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밀의 90%를 차지하는 '보통계 밀'(common wheat)의 원산지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카프카스에 이르는 지역이라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는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등 중근동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고, 기원전 3천년경에는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에 전파돼 그 문화를 지탱해왔다.
중국에는 기원전 2천년경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래된 후 국수(麵)의 '발명'을 낳았다. 국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설 외에 아랍설, 이탈리아설 등이 있지만, 신빙성 있는 기록은 중국 동한(東漢)시대(서기 25-220년) 것이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2002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는 칭하이(靑海)성 민허(民和)현에 있는, 4천년 전 지진으로 매몰됐던 한 유적지에서 길이 약 50㎝, 지름 0.3㎝의 국수 가락을 발견한 바 있다.
한반도의 밀 생산량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 송(宋)나라 휘종(徽宗)이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낼 때 수행한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보면, "나라 안에 밀이 적어 모든 장사꾼들이 중국(京東道)에서 사오므로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고 귀하여 성례(盛禮)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사' 충혜왕조에는 "내주(內廚)에 들어가서 쌍화(雙花.상화떡)를 훔쳐먹은 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밀이 그만큼 귀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밀로 만든 음식은 조선시대에도 그다지 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면에서 밀을 쌀이나 보리와 견줄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래 동안 우리 민족의 중요한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 식생활의 서구화 추세와 함께 밀의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생산에 의한 자급률은 형편없이 낮다. 현재 우리의 밀 자급률은 0.3%에 불과하고, 나머지 99.7%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물량의 절반 이상은 미국산이다.
수원에 있는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의 종자은행에는 재래종, 개량종, 외래종을 합쳐 1천300여 가지의 밀 유전자원이 종자 상태로 저장돼 있다. 20-30년 동안의 중기 보존용 종자들은 플라스틱 병에 담겨 중기저장실에, 100년 이상의 장기 보존용 종자들은 알루미늄 팩으로 밀봉된 채 항상 -18℃를 유지하는 장기저장실에 안전하게 '모셔져' 있다.
종자은행에서는 일부 종자를 요청에 따라 분양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 연구기관 이외에 농가 등의 분양 요청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고 한다. 국내 밀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추세와는 반대로 밀 농사는 끝 모르게 쇠퇴일로를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60년 전인 1948년에 약 10만9천ha에 달했던 밀 재배면적은 1972년 이후 급격하게 감소해 1984년에는 약 6천400ha, 1988년에는 753ha로 줄었고, 1992년에는 불과 164ha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의 밀 농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요인의 하나로 해방 직후의 미국 잉여농산물 도입이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 '피점령지역 구호원조(GARIOA원조)'라는 명목으로 밀 8천t을 실은 미국선박을 앞세워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군정 초기에 구호원조로 개시됐던 잉여농산물 도입은 195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잉여농산물 수출정책과 결합돼 그 양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
잉여농산물의 지속적인 도입은 국내 농업 생산기반의 파괴는 물론이고, 자급이 가능했던 면화, 밀 등의 농산물을 영원히 수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심지는 국민의 식성까지 변화시킴으로써 농산물의 자급률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밀가루(제분), 설탕(제당), 면직물(면방직공업)등 이른바 '3백산업(三白産業)' 같은 기형적인 공업화도 미국의 잉여농산물 때문이었다. 잉여농산물의 이같은 악효과는 1999년 당시 농림부가 펴낸 '한국농정50년사'에 기록돼 있다.
작년의 국내 밀 재배면적은 1천928ha였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2천549ha로 작년에 비해 32.2%(621ha) 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에 따라 수입 밀(원맥) 가격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계청의 분석이다. 작년 3월 1㎏에 239원이었던 수입 밀 가격은 금년 3월 455원으로 배 가까이 올랐고, 국산 밀 가격은 856원으로 변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달 27일 우리 밀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밀 가공식품 생산업체, 생산자단체, 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우리 밀 생산 확대를 위한 민간.정부 협의체'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우리 밀 자급률을 2012년에는 5%로, 장기적으로는 1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전남 순천시, 전북 군산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도 나름대로 우리 밀의 생산 및 소비기반 복원에 나서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 밀은 농약오염의 위험이 높은 외국산 수입 밀과는 달리 원천적으로 잔류농약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밀에는 수입 밀에 없는 복합 다당류 단백질이 다량 함유돼 있어 면역기능을 높여주고 노화를 억제해주는 역할을 하는 등 인체에 이로운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강원대 최면 교수). 이런 점에서도, 미미한 것이기는 하지만, 밀 재배면적 확대는 희망적인 신호다. 정부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바람직한 시점이다.
d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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