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준억 이 율 박대한 기자 = 고유가 등 대외변수 악화와 내수 위축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가 큰 폭으로 위축되면서 정부의 경기대응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당초 4조9천억원에 이르는 세계잉여금 잔액을 경기부양에 쓴다는 정부 계획이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6월 임시국회 전까지 재정지출(추경편성), 감세, 감채(채무상환)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지만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효과가 예상되는 추경 편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 경기 하강진입..경제전망 하향
재정부는 28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투자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현 경기상황에 대해 "정점을 통과해 하강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적극적인 재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 최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올해 6% 성장은 어렵고 2.4분기부터 성장률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경기하강에 대한 공식적인 진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정부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우선 경기선행지수의 하락세를 꼽았다.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했고 2월에는 동행지수도 떨어졌다.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간 시차가 3~4개월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가 이미 정점을 지나 하강국면에 진입했다는 설명이다.
재정부는 또 1~2월의 재고출하 순환이 경기 둔화 방향으로 이동했고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돼 향후 경기둔화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3월 소비자기대지수와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가 각각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3월 취업자 증가가 18만명에 그친 고용사정의 악화가 향후 민간소비와 서비스업 활동 등 내수경기와 직결된 부문을 중심으로 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재정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가 6만명 감소하면 향후 1년간 민간소비는 0.1%포인트 감소하고, 서비스업 취업자 수가 6만명 줄면 서비스업생산은 0.1%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재정부는 현재 경제성장이 수출주도형 패턴이 심화돼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2.4분기 이후 내수를 중심으로 추가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3월에 제시했던 경상수지 적자규모 전망치인 70억달러를 70억~100억달러로 조정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에서 3.5%로 높였다.
특히 연간 취업자 수 증가폭은 당초 35만명을 제시했지만 당분간 20만명 내외로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며 지난해의 28만명보다 크게 둔화될 우려가 있다며 크게 낮춰 잡았다.
재정부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공식적으로 수정하지 않았지만 주요 기관들이 최근 전망치를 4%대 초중반으로 하향조정한 것을 인용해 간접적으로 성장률 전망치도 하향조정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임종룡 경제정책국장은 "전반적인 경기상황 변화로 인한 성장률 목표치 수정은 일단 상반기 경제 운용을 해보고 하반기 경제운용 발표 때 다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 추경 카드 아직 '유효'
이처럼 최근 경기둔화 움직임이 가속화됨에 따라 정부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으로 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추경 편성을 염두에 뒀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당장 실현에 옮기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고심하는 모습이다.
지난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방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즉각적 경기대응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당의 반대를 수용해 4월 국회에서는 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서면서 추경(재정지출) 뿐만 아니라 감세와 감채(채무상환) 방안도 함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임 국장은 "4조9천억원에 이르는 세계잉여금 잔액 활용과 관련해 크게 재정지출과 감세, 감채 등 3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면서 "당과 협의해 나갈 것이며 6월 임시국회까지는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추경 카드가 경기회복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하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재정지출과 감세, 감채는 각기 다른 경로로 경기부양 효과를 지닌다. 정부가 인용한 조세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재정지출은 그 자체가 총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이므로 즉각적이고 경기부양 효과가 크다.
반면 감세도 경기부양에 긍정적 효과를 지니지만 세금 감면이 소비 확대에 이어 다시 성장률 제고로 나타나기까지는 파급경로가 복잡해 재정지출에 비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식어가는 경제를 다시 되살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감채의 경우 국가에서 발행하는 국채를 상환하면 채권물량 감소로 금리가 떨어져 전반적인 시장금리가 낮아지고, 이는 금리 인하와 같은 효과로 경기를 진작시키지만 국채 금리 인하가 은행대출이 대부분인 가계와 기업의 자금 부담을 얼마나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정부는 지적했다.
이러한 정부 입장은 감세와 감채의 경우 즉각적 경기진작 효과가 의문시되는 만큼 재정지출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6월 새 국회가 들어서면 논의해야할 사안"이라며 "추경을 안한다는 것은 아니고 당과 우선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추경을 편성할 경우 활용 용도와 관련, "정부는 가급적 (추경 재원을) 국가 인프라 확충에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경제살리기, 일자리 창출 등에 쓰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성장목표 현실화, 다행"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존의 비합리적 성장 목표치를 현실에 맞게 조정한 것은 신뢰성 확보나 무리한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경계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목표가 너무 현실과 멀면 신뢰성이 없어지는 만큼 신뢰성 확보차원에서 전망을 현실화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은 국회구성 후 빨라도 4.4분기에야 효력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7% 성장목표에 맞춰서 무리하게 경기부양책을 추진할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6% 내지 7%로 잡았던 성장률 목표에 치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면서 "원래 성장률 목표는 이를 성취하는 것보다는 노력하겠다는 의미가 강한데, 이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장정책에 치중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정부가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단기적 부양에 치중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여겨져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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