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이미지 상실한 이명박
총 3회에 걸친 TV 정책토론회에서 이명박의 야심찬 '7·4·7공약'과 '한반도 대운하'가 구라 공약으로 밝혀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장 전입'과 '주가 조작'까지 불거지고 말았다. 이쯤 되면 사실상 이명박의 낙마는 기정사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4·7'과 '대운하'야 애시당초 없던 것이었으니까 구라로 밝혀지더라도 참을만 한데 '위장 전입'과 '주가 조작'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내집 마련의 꿈'을 필생의 소망으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인구가 대략 얼마나 될까? 전세와 월세를 전전하는 무주택자와 보다 쾌적하고 넓은 집을 갖기를 소망하는 1가구 1주택 소유자를 합치면 대략 65% 정도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무주택자 25~30%, 1가구 1주택 소유자 35~40%) 또한, 예전 언론기사에서 확인하기를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주식투자를 해본 가구가 약 15% 수준이라 한다.
개미 주식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 3명 중 2명이 1가구 1주택 소유자라고 가정할 경우 대략 전체 인구의 5% 정도는 '내집 마련의 꿈 좌절'과 '주식 깡통계좌'의 아픔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당장 '反이명박'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부동산투자와 주식투자에서 각각 고배를 마신 사람들을 합하면 대략 전체 인구의 10~15% 정도가 향후 '反이명박' 정서를 가질 가능성이 높은 층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이명박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대략 33~40% 수준임을 감안할 때 여기서 10%가 빠지면 23~30%가 되어 사실상 박근혜와 '박빙의 승부'가 연출되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명박은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이명박이 최근 한달간 지지율이 5~10% 빠지는 동안 박근혜의 지지율 상승은 2~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록 추세는 '이명박 하락, 박근혜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박근혜의 지지율 상승 속도가 대단히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 최소한 20~30일간 '이명박 지지율 1위' 구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선거는 '구도'와 '흐름'의 싸움이다. 지금까지 대권에 출마했던 그 어떤 후보도 지지율이 급락했다가 급등한 사례가 거의 없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2002년 노무현이 유일한 예외였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3가지 변수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첫째, 한때 50%를 넘었던 지지율이 16%까지 급락하는 동안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간 지지율이 거의 고스란히 '제3의 후보'인 정몽준에게 옮겨갔다는 점이다. 與野 양당구도 속에서 '제3의 후보'로 흘러들어간 중도성향 지지층은 그 결집도가 낮을 수 밖에 없으며, 더욱이 '월드컵 4강'이라는 일시적 열풍 속에 지지율이 올라갔던 만큼 언젠가는 노무현에게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 속에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여중생 미군 궤도차량 압살사건'으로 진보개혁 성향 지지층이 자연스럽게 결집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친미굴종이냐 자주외교냐' 그리고 '전쟁이냐 평화냐'의 구호가 여론에 먹혀들어가면서 노무현이 반등의 기회를 잡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중도개혁의 대표성을 노무현이 독점할 수 있었고, 이를 발판으로 대통령선거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아마도 이와같은 '롤로코스터' 선거는 향후 수십년간 다시 재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것은 대단히 예외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87년 김영삼, 92년 정주영, 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등이 한결같이 상승세가 꺾인 시점을 기준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87년 김영삼의 경우 '군정종식'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여론에 먹히면서 한때 노태우와 2~3%의 박빙승부를 연출했지만 10.26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를 선대위 고문으로 영입한 것이 여론의 역풍을 맞아 하락세로 돌아섰고, 결국 노태우에게 10% 차이로 대패하게 된다. (노태우 36%, 김영삼 27%, 김대중 26%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92년 정주영, 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또한 지지율 3위로 하락한 이후 단 한번도 상승세로 돌아서는데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와같은 역대 대선의 흐름을 감안할 때 이명박의 2위 추락은 시간 문제이며, 늦어도 7월말 쯤에는 박근혜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할 운명에 놓여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와같은 현상이 벌어질 경우 '逆밴드웨곤 효과'가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도리어 박근혜 쪽으로 힘의 균형 추가 급격하게 쏠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인제가 2002년 광주경선 패배 이후 사실상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간 이후 결국 수도권 경선 직전에 중도포기 선언을 한 것과 같은 수순을 이명박이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박근혜는 후보 경선에서 사실상 단독후보로 추대되는 모양새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
똑같은 지지율 25%라고 하더라도 20%에서 올라간 25%와 50%에서 추락한 25%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곧바로 선거 프의 레임덕과 중간지대 대의원들의 일시적 표쏠림으로 이어져 사실상 선거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필자는 그것을 견뎌낼 힘이 이명박에게 없다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지지율을 반전시킬 그 어떤 카드도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의 하락세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선다면 박근혜의 '완만한 상승세'가 끝내 이명박과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는데에 실패하게 될 것이고, 이와같은 흐름을 타고 '이명박 대세론' 다시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거에 있어서의 '심리적 요인'을 간과한 지극히 도식적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상당수 정치평론가들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이명박 생존의 마지노선으로 '지지율 35%'를 상정한 이유는 '거품 지지율에 대한 우려'와 '당심에서의 박근혜 우위 상쇄' 때문이다. 그나마 이것도 박근혜 지지율이 20~25% 박스권에 묶어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최근 실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박근혜가 25~30%를 기록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제는 지지율 37~38%도 이미 지노선을 넘어선 '대단히 불안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명박 지지율이 다시 안정적인 40%대로 올라서지 않는 이상 이명박의 생존 가능성은 없어진다.
향후 한나라당 경선 및 대통령선거 본선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까?
이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이회창이다. 비록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지만 만일 박근혜가 끝내 이명박과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이로 인해 당심마저 이명박 쪽으로 급격하게 쏠려 경선 승리 가능성이 사실상 소멸되었을 경우 박근혜는 '이회창 카드'를 들고나올 수 있다. 이미 이명박과 '루비콘 강'을 건너간 박근혜가 '패배 가능성 100%'인 상황에서 이명박 승리를 위한 화려한 조연을 맡아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이명박으로는 절대 본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들고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파괴력있고 효과적인 카드가 바로 '이회창'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외부영입을 통해 재미를 톡톡히 본 바가 있다. 작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맹형규와 홍준표가 모두 강금실에게 지지율에서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한나라당은 이미 후보등록 기간이 마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 후보등록'이라는 카드까지 던지면서 오세훈을 영입하였고, 이로 인해 강금실에게 여유있게 승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
만일 박근혜가 중도하차한 상황에서 이명박이 다른 군소후보들을 데리고 경선을 치루는 상황이 될 경우 박근혜는 '이회창 영입'을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고, '오세훈 영입'의 산파역을 자임했던 이명박인 만큼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이회창 영입을 통해 '경선 흥행'과 '후보 경쟁력 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이회창과 이명박이 견선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경우 수많은 의혹으로 인한 '검증'에 시달리는 이명박은 결코 이회창이을 넘을 수 없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혹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더라도 범여권 후보단일화로 인해 또다시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한나라당은 '후보 교체' 압력을 지지자들로부터 받게 될 것이며, 그 대안은 이회창과의 또 한번의 '진검승부' 연출 이외에는 없다. 결국, 이명박은 박근혜를 넘어서더라도 이회창이라는 더 큰 산이 버티고 있는 만큼 후보가 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박근혜가 경선 직전에 지지율에 있어서 이명박에게 역전하는 데에 성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당심을 완벽하게 장악할 경우 '朴風'은 대단히 강력한 메가톤급 태풍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노무현이 돌풍을 일으켰던 것도 선두주자인 이인제에게 극적인 역전을 거두었고, 그 기세를 몰아 민주당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인제를 꺾은 데에 따른 여론의 동요와 이로 인해 '이회창 대세론'마저 무력화시킴으로써 노무현은 일약 선두주자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박근혜를 둘러싼 흐름이 당시와 대단히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 경선 승리의 경우 이회창 대권출마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이회창은 한나라당 벤치에 앉아있는 이승엽
그 역할이 킹이 되었건 킹 메이커가 되었건 이회창은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범여권은 단지 이명박과 박근혜를 넘어뜨렸다는 것만으로는 정권 재창출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에 있어서 이회창의 존재는 마치 '마이클 조던, 이승엽 혹은 박지성이 벤치에서 출전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2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네거티브' 검증 공세로 패배했고, 2002년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에는 어떠한 정치활동이나 공직활동도 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검증 거리가 나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동정론과 기대론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이회창의 지지율 강세는 왠만한 것으로는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하여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을 경우에 가장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는 전략이 바로 '이회창 선대위원장' 카드다. 2번에 걸친 대권도전 실패로 한나라당 당원들은 물론,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큰 좌절감과 부채를 안겨준 이회창임을 감안할 때 이를 거절할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 만일 이회창이 선대위원장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닐 경우 범여권은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박근혜와 이회창이라는 '두마리 공룡'에 맞서 대단히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범여권에서 이회창에게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은 노무현과 김대중 밖에는 없는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선대위원장을 맡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찌보면 현재 한나라당은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지지율 1~2위 후보 이외에 이회창이라는 또 한명의 장외 수위타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10년간 권력 핵심에서 배제되었고, 이로인한 전통 보수층 및 TK지역의 상실감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회창 카드'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반드시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이명박이 '상처 투성이' 대선후보로 선출될 경우에는 이회창이 바로 그를 대신하여 본선에 진출하게 될 것이며, 박근혜가 극적인 역전승을 연출하여 한나라당 후보가 될 경우에는 그 여세를 몰아 승리를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이회창 선대위원장' 카드가 현실화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아성은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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