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경기도 수원의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10대 소녀가 심한 폭행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소녀는 함께 생활해온 20대 남성 노숙자들 4명에 의해 심하게 맞은 뒤 방치된 채 숨졌다.
경찰에 의해 다음날 검거된 피의자 정모(29)씨는 "이 소녀가 후배의 여자친구 돈 2만원을 훔친 것으로 오해했다"고 진술했다.
수원역 대합실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20~30대 노숙자 무리의 일명 '짱'인 정씨는 또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하는 소녀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때렸다"고 말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집단폭행으로 소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건장한 4명의 남성에게 맞아 숨져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조사에서 드러난 여성노숙자들의 삶은 더욱 처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10대 여성 노숙자들은 남성들의 폭력은 물론 성추행 등 성폭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또 뜸하지만 일용직 노동 등으로 용돈을 벌어쓰는 남성들에 비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여성들은 노숙자들을 상대로 성매매에 나서거나 노숙자 남자친구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사건을 수사하며 10대 여성 노숙자들이 남성 노숙자들에게 1만~2만원의 현금과 잠자리를 제공받는 형태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또 숨진 소녀처럼 무리에 속하지 못할 경우 남성들의 폭력에 수시로 노출되는 경우도 많아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수원시 노숙인들의 집결지인 수원역 대합실에서 만난 노숙자 강모(29)씨는 "무리에 속한 '꼬마'(10대 노숙자)들은 형님들이 돌봐주지만 일부 새로 온 아이들(소녀)은 나이든 노숙자를 따라가 돈을 받고 하룻밤 잠자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며 "폭력과 성폭력 때문에 무리에 속하거나 남자친구를 사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숨진 소녀의 시신에서도 오랜 기간 폭행에 시달려온 듯 다리 등에서 오래된 멍과 상처가 발견됐고 수원역 인근 매산지구대에는 노숙자들간 폭력행위에 대한 신고가 수시로 접수되고 있다.
4년 전부터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김모(32)씨는 "대합실에 새로 나타난 '꼬마'들은 처음엔 무리에 어울리지 않다가도 여기저기에서 폭행을 경험하다 보면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며 "대부분 그들 무리 중 한명과 사귀는 형태로 무리에 속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폭력과 성매매에 시달리는 10대 소녀들을 보다 못해 일부 나이든 노숙자들이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달라"며 경찰에 데려가기도 하지만 딱히 갈 곳 없는 소녀들은 곧 대합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불화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10대 여성 노숙자들은 대부분 집에 가는 것을 꺼려해 인근 쉼터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노숙자간 폭행이 신고돼도 현장에 출동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가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아 처벌이 힘들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수원=연합뉴스) press1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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