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시설 폐기 단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등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26일 귀국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서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외교위원회 간사.공화)을 만난 이유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루가 의원은 과거 구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핵시설 폐기를 위한 지원방안을 담은 1992년의 `넌-루가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다. 관심국들이 공동으로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대신 핵보유국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우크라이나 방식'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천 본부장이 루가 의원을 만난 것은 다소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 이후 폐기 단계로 접어들었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이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연계돼 있다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국자는 "핵시설 폐기단계에 들어가게 될 경우를 생각해 지금부터 연구를 하고 계획을 검토해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했다.
다시 말해 북한 핵시설이 폐기되는 것을 대비해 원자력 산업에 종사하는 북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재훈련하고 재취업시키는 문제 등을 폭넓게 다뤄야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넌-루가 법안에 잘 정리돼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천 본부장이 루가 의원을 만나 과거에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등에서 해왔던 것을 지금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에서 만나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실제 핵시설 폐기를 추진할 경우 미국내 정치권이나 의회의 초당적 지원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점을 감안해 루가 의원과의 면담을 공개리에 추진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루가 의원은 민주당 출신 샘 넌 전의원과 함께 초당적으로 법안을 마련했으며 관련 조치에 대해 초당적 지지를 받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북한 핵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위해 미국 정부가 북한에 직접 자금과 장비 및 기술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해왔다.
특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시설을 산업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미국이 직접 참여하는 문제가 주로 다뤄졌고 그 모델로 등장한 것이 넌-루가 법안의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은 넌-루가법안 등 관련법에 따라 모두 16억달러 규모의 정부예산을 마련해 수천 기에 달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핵탄두와 미사일, 잠수함과 폭탄 등을 제거해 왔다.
하지만 일부 외교소식통들은 "수천기에 달하는 핵무기를 폐기한 우크라이나 등과 소수의 핵무기만을 보유한 북한을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핵폐기 방식에는 리비아 방식 등도 있는 만큼 실제 북한이 핵폐기 단계에 가면 정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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