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진우기자]["호재 부각되면 견제만 심화"... 몸 낮추면서 실속 챙기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양국의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국내 자동차 산업 입장에서는 미국산 일본차의 수입 등 고려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지난 2일 한미FTA 협상 타결 직후 현대차가 내놓은 첫 공식입장은 의외로 담담했다. 나중에 추가로 문답형식의 자료를 내놨지만 이 역시 대부분 "관세가 철폐되면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FTA 타결 내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애매함을 넘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을 법 했다. 현대차는 협상 타결 이전에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 코멘트할 수 없다 "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FTA 협상과정에서부터 한국의 자동차 세제개편 등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의회까지 동원해 치열한 로비를 펼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국 협상단을 압박, '자동차' 분야가 최대의 쟁점으로 부각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FTA 타결로 3000cc 미만인 차의 관세(2.5%)가 당장 철폐될 경우 현대·기아차는 대당 200~400달러의 가격인하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화강세에다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메이커들의 저가공세로 미국시장에서의 가격정책에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가격경쟁력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국내시장에서는 세제개편 등으로 미국산 자동차의 가격이 내려갈 경우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손익계산서 상으로는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왜 여전히 담담한 표정일까.
업계에서는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분석을 주목하고 있다. 원래 무엇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더 목소리가 큰 법이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메이커들의 태도가 그랬다.
반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측에서는 특별히 더 얻어내야 할 것이 있지 않는 한 굳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현대차의 태도에서도 그 일면이 읽혀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최대한 몸을 낮추면서 실속을 차리는게 현대차 입장에선 더 이득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만히 있어도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는데 굳이 오버(?)를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현대차는 더욱이 최근 수년새 글로벌 생산기지를 대거 확충하고 품질도 크게 향상되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로부터 견제를 당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특히 경영부실로 과거의 영광을 모두 빼앗긴 미국 메이커들로선 일본차들과 함께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나서 '호재'를 들먹일 경우 미국 경쟁사들의 견제만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다.
2년 전인 2005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현대차는 '글로벌 톱5 도약'이라는 야심찬 비전을 내놨다가 돌연 "톱5는 아직 무리"라며 스스로 목표를 하향조정했다.
최한영 당시 사장(전략조정실장 겸 마케팅총괄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아직 '빅5'와 상대가 안되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도 최근 급성장을 이유로 (해외에서)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현대차가 기존 선발업체들의 집중적인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현대차로선 해외에서 무서운 견제대상으로 이목을 끌 경우 무역제재나 불매운동 등의 역풍을 만날 수도 있다.
이번 FTA도 마찬가지다. 자칫 면밀하게 실속을 따져 보기도 전에 마치 커다란 혜택을 입은 것처럼 비춰질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차라리 스스로 자세를 낮추면서 실속을 챙기는게 더 좋은 전략이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득실을 놓고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미국시장 공략을 위한 공격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진우기자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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