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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면편집국장][[박종면칼럼]'역지사지' 원리로 불통에서 소통으로 가야]

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점치는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서경(書經)에는 나라에 중대사가 생겼을 때 점을 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선 임금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다음엔 조정의 신하들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이것으로도 안되면 마지막으로 거북점이나 역점을 쳐서 결론을 내린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점치는 문제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주역(周易)입니다. 공자도 죽간을 꿰맨 가죽끈이 세번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고 합니다. 주역은 64괘에 대한 해설인데 그 11번째 괘가 '지천태'(地天泰)고 12번째가 '천지비'(天地否)입니다.
 
지천태는 64괘 중 가장 좋은 괘라고 합니다. 천지가 교감하고 음양이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있는 하늘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함으로써 천지가 교통하게 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태평성세의 괘입니다.
 
천지비는 정반대입니다. 천지가 막혀 있는 형국이죠. 위에 있는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아래에 있는 땅의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교감하지 않고, 만물이 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하가 교통하지 못하니 천하에 나라가 없고, 소인의 도는 자라고 군자의 도는 소멸하는 괘입니다.

"위아래 교통이 없어 하늘도 나라도 열리지 않고 인적 끊긴 길 /속마음은 좀 쓸고 큰 갓 쓰고 말없는 군자 /띠뿌리는 아직 봄을 기다린다/ 안방은 광란의 무도장/ 사랑에 손님이 있으랴/ 재물은 칼찬 난장이의 것. 동양사상가 기세춘의 천지비괘에 대한 해석입니다.

1년 이상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궈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타결됐습니다. 한·미 FTA는 쇠고기 같은 농산품과 자동차 섬유 등 공산품 관세 개방부터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통신 및 전자상거래 의약품 등 한국사회 전반을 바꿔놓을 엄청난 사건입니다. FTA는 미국은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아세안 9개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인도, 나아가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합니다.
 
FTA는 대외적으로는 천지가 교통하는 태의 괘, 태평성세의 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 내부로 오면 불통과 폐색의 비괘입니다. 농촌과 도시가 막히고, 기업가와 농민이 대치합니다. 농촌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 사이에도 불통입니다. 자동차 전자 등 첨단업종에 근무하는 사람과 비정규직 근로자 사이에도 이해가 다릅니다. 정치권도, 정부와 시민단체도 대립 분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양국이 협정문에 서명해도 국회 비준을 얻어 정식 발효되기까진 과정이 험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말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천지비'(天地否)의 괘인 한·미 FTA를 '지천태'(地天泰)의 괘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태평성세의 괘인 지천태는 일반 상식과 정반대 의미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상식으로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지천태의 괘에서는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습니다. 그 결과 위에 있는 땅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에 있는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 천지가 교통하고 태평의 세월이 온다는 것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 '강의'에서 이를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원리와 같다고 말합니다.
 
기업하는 사람은 역지사지의 이치로 농촌의 농민을 생각하고, 도시의 소비자도 농촌의 생산자 입장이 돼 절박한 마음으로 FTA를 바라볼 때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농촌의 생산자들도 공산품을 생산 수출하는 기업하는 사람과 도시 소비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대통령도 FTA 문제는 내가 결단했다고 호기를 부리기 보다 하늘에 점을 치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에게, 참모들에게, 그리고 백성들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입니다.
박종면편집국장 myun@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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