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진상현기자][기관들 요구 수준 갈수록 높아져.."출혈 경쟁" vs "미래 위한 전략"]
"우선 협상권을 따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손실이 나지 않는 수준만 돼도 했을 겁니다"(국민은행 관계자) "당장의 수익과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내린 전략적 판단이다"(신한은행 관계자)
은행권의 저리 자금 조달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기관 영업을 놓고 신경전이 한창이다.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유치 비용이 크게 늘어나 '제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아니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어렵게 선정됐던 국민연금공단 주거래은행 1순위 협상자 자격을 지난해 연말 포기했다. 지난해 기준 보험료 수입은 연 20조2000억원, 적립금 누적액은 182조2000억원, 연금 지급액 4조8000억원의 군침도는 '공룡 기관'의 주거래은행을 마다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도저히 손익을 맞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국민연금은 자금결제시스템 뿐 아니라 인사 예산 등 다른 내부 전산시스템 확충을 요구했고 이로 인한 비용만 약 100억~200억원으로 판단했다. 반면 국민연금의 주거래은행이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주된 수익은 하루 약 2500억원 정도의 저리 자금을 운용해 얻는 수익.
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 내부 전산을 거의 새로 깔아주는 수준의 요구를 해와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5년 동안 주거래은행을 맡아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순위 후보자였던 우리은행도 같은 이유로 주거래은행을 포기했고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은 3순위였던 신한은행으로 돌아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본 것이 아니라 최대규모의 기관을 유치하는데 따른 마케팅 효과, 운용 경험 등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쟁은행들은 신한은행이 국민연금의 요구를 들어준데 대해 내심 불만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방대학의 등록금 수납 업무를 따올 때도 카드 시스템을 확충해달라고 요구하는 실정"이라며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보이콧을 해서라도 기관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시도금고, 공공기관, 대학, 병원 등을 대상으로 한 기관 영업에 대한 '출혈경쟁'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혈경쟁 문제를 제기하는 은행이 하루아침에 출혈 경쟁이라는 비난을 듣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2005년 우리은행이 수성에 성공했던 서울시금고 유치전을 시작으로 지난해 연말 신한은행 품으로 돌아간 인천시금고 때도 '출혈 시비'로 떠들썩했다. 우리은행이 신한은행으로부터 뺏아았던 서강대 지점 유치전도 한동안 논쟁거리가 됐다. 기관들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부에서는 "은행이 '봉'이 됐다"는 푸념도 나온다.
하지만 '출혈 논란'이 단시일내에 사그라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출혈'의 기준이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독당국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시도금고 유치 등의 과정에서 손익 분석을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보내는 등 출혈경쟁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며 "하지만 각 은행 사정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어 출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별은행 검사 때마다 손익 분석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고 건정성에 무리를 줄 정도로 과당경쟁을 하게 되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다만 최근의 시도금고 등에는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출혈 경쟁의 잣대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만큼 차제에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있었던 하나은행 마이웨이카드의 경우 감독당국이 직접 과당 경쟁을 이유로 서비스 축소를 요구했다"며 "감독당국의 잣대가 일관되지 않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진상현기자 j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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