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상배기자] 최근 제기되는 '경제위기론'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앞다퉈 반박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과거의 위기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등 피상적 근거에 기댄 논리여서 재계 원로들이 현장에서 위기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22일 국정브리핑에 실은 '재계원로 발언과 경제위기론'이라는 글에서 "경제위기론이 서로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자리로 변질된다면 과연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 국장은 "필자도 모 방송국과의 전화 인터뷰가 본의와 달리 언론의 정부 공격용 소재로 탈바꿈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며 경제위기론이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비판했다.
그는 "최근 경제위기론의 시발점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언인 듯 하다"면서 "이 회장의 위기 발언은 비단 이번 뿐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처음 승계받아 '신경영론'을 주창할 때, 삼성전자가 상상최대 순이익 기록을 이어가던 1995년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2월 중국의 선박 수주량이 우리나라를 추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조선 4사의 수주량이 생산능력을 이미 초과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수주량이 밀려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잉여생산능력을 갖춘 중국이 추월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김석동 재경부 제1차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증권투자액이 2700만달러에 이르고, 국내총생산(GDP) 면에서도 11번째 거대경제권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이런 토대 위에서 단순한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 경제의 현재 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따른 것 아니냐"고 했다.
김 차관은 "단기적으로 시스템 위기에 따른 위기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고,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모두 건전성이 제고됐으며 투명성도 확보됐다"고 말했다.
앞서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정브리핑에 '주몽과 중·일 샌드위치론'이라는 글을 싣고 "10년 전 세계적 경영컨설팅사 ‘부즈앨런’에서 지적한 ‘넛크래커(호두까기)론’이 요즘의 ‘샌드위치론’과 무슨 본질적 차이가 있는가"하고 되물었다.
김 장관은 또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우려가 지나쳐 자칫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를 비판하는데 급급한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산업현장에서 느끼는 위기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는 조선업계 수주량이 중국에 추월 당한 것이 주문량 포화 때문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지금 당장이 아니다"며 "중국도 수주량 확대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쌓아 우리처럼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게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정부는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과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등 위험요인은 잠재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다른 경제연구소의 고위 관계자는 "과거 넛크래커론과 다를 바 없는 샌드위치론으로 호들갑을 떤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됐느냐"며 "병이 치료가 안 됐으면 계속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위기론이 듣기 거북하니까 반박하는 것 같다"며 "정부 당국자들이 기업하는 사람들의 속을 알겠느냐"고 말했다.
이상배기자 p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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