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승호기자]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이 재계 '킹메이커'로 등장했다. 이 회장은 '경제 대통령'으로 통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뽑는 과정에서 그동안 보여주었던 '조용함'을 과감하게 벗어덧졌다. '70대 불가론'에 이어 '강신호 3연임 반대' 등 소신있는 발언을 쏟아냈던 것.
이 회장은 지난 20일 전경련 임시총회에서 조석래 회장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할 것을 제안한데 이어 자신이 제기한 '70대 불가론'이 조 회장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8장짜리 자필 원고를 전경련 출입기자단에 배포하며 "지난 2개월 동안 강신호 회장과 사무국이 전경련 위상에 너무 큰 상처를 만들어 놓았다"고 말해 회장단의 일원이 공식 석상에서 전 회장과 상근부회장의 행태를 낱낱이 비난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재계에서는 '보수적인 기업' 대림산업을 이끌어온 이준용 회장의 이 같은 파격 행보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면모, 흐트러짐 없는 자세' 등 평소 보여주었던 '선비적인 CEO'의 면모가 드러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1988년 5공청문회 당시 이 회장이 보여준 일화는 아직도 회자될 정도. 이준용 회장(당시 부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를 다룬 '일해재단관계 청문회'에 유찬우 풍산금속 회장과 최순영 신동아건설 회장, 장치혁 고려합섬 회장 등과 함께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유는 정치권 실세에 3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기 때문었이다.
당시 증인으로 채택된 대다수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여러 사정상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시종 일관 정치자금 제공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과감하게 "(정치자금을)줬다"며 "저쪽에서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 줄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소신과 함께 '할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선비정신이 그대로 나타났던 것.이준용 회장의 결혼관에서도 소신있는 일면을 알 수 있다. 그는 1965년 이화여대 출신의 한경진씨와 연애 결혼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평탄하지 않았다. 한씨의 부친인 한순성씨는 충남 천안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당시 재계는 정치권이나 대기업 총수 일가간 '혼맥 잇기'가 유행하던 시절. 결국 두 사람은 결혼 전에 양가의 반대에 부딪쳤다
예기치 않은 '양가 반대'에 부딪친 이 회장은 한때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특유의 소신과 끈질긴 설득 끝에 자신의 평생 반려자를 지켜냈고, 3남2녀라는 화목한 가정을 일궈냈다.
이준용 회장의 '소유와 경영 분리'라는 원칙은 재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3남2녀 중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을 제외하곤 그의 자식들이 대림산업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을 정도. 능력을 검증 받아야만 '오너' 일가라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는 셈이다.
이 회장의 집무실은 4층에 있다. 그래서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을 자주 이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 일 많은 직원들이 빠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판단에서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진하게 묻어나 있다.
이 회장은 대림그룹의 지배구조를 대림코퍼레이션을 통해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어느 기업보다 투명하고 단순명료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회장이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89.9%를 보유하고, 다시 대림코퍼레이션이 대림산업 지분 21.67%를 확보함으로써 대림산업이 오라관광(100%)과 대림자동차공업(100%), 삼호(46.76%), 고려개발( 49.8%)을 계열사로 편입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여타 대기업들의 순환출자방식이 아닌 셈이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말 스스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소유와 경영 분리를 통한 전문경영시대'을 선포했다. 이용구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자신은 지난 3월9일 대림산업 정기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
최근 이준용 회장은 전경련 등 대외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소유와 경영 분리'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모범이 돼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있다'는 기본에 '곁눈질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파는 고집쟁이 정신'이 이준용 회장을 주목하게 하는 이유다.
이승호기자 simonlee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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