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다시피, 민주당은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의 계승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 ‘개혁’이라는 슬로건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민주당을 보면, 이들이 내걸고 있는 이러한 구호들이 그야말로 ‘구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10월의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등은 연일 ‘대북 지원 중단’ 혹은 ‘경제 제재’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몇몇 극우성향의 의원들은 ‘국지전도 불사해야 한다’는 식의 위험천만한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애매모호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북한 핵실험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때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김근태 의장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남북 간의 화해 협력은 계속 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어제(11월 26일)는 열린우리당 내의 개혁성향 의원들과 기간당원들 단체인 ‘참여정치실천연대’가 금강산을 방문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금강산 방문 이유에 대해 “금강산 관광이 계속 돼야 하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 역시 그간 수차례에 걸쳐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우리 정부가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해왔다. 대북포용정책 역시 계속돼야 한다고도 했다.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 역시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지난 11월 초 평양을 방문해 북한 지도자들과 만난 이후, 오늘(11월 27일) 또 다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개성방문에서 한미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록 민주노동당이 의원 9명에 불과한 미니정당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현재 ‘일심회 사건’ 등으로 정치적인 곤란에 처해 있다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정당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정책에 입각하여 일반적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결합한 정치결사’라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견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열린우리당처럼 사안에 따라 당내 의견이 이리저리 갈리는 ‘잡탕정당’도 있지만, 정당은 대개의 경우 현안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이러한 통일된 목소리에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관, 즉 정체성이 녹아 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당은 어떤가. 자칭 ‘햇볕정책의 원조’인 민주당은 그간 북한에 대한 제재에 반대해오던 입장을 돌연 바꿔 이를 찬성할 뿐만 아니라, PSI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정체성은 여전히 ‘중도개혁’, ‘평화번영’, ‘남북화해협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닌,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정당이 입장을 달리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북문제에 대해서만은 민주당의 입장은 확고해 보였다.
허나 민주당은 지금 때 아닌 당권투쟁에 몰두해 있다. 한화갑 대표와 정균환 부대표의 ‘고건 전 총리’를 둘러싼 싸움이 그것이다. 한 대표의 정계개편에 대한 근거가 빈약한 자신감이나, 정 부대표의 ‘무작정 고건 매달리기’ 역시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만약 민주당이 진정으로 정계개편이나 내년 대선 정국의 ‘키’가 되고 싶다면, 서울에서는 보수진영을 의식하고 호남에서는 ‘선생님’을 팔아먹는 행태는 종결돼야 마땅하다.
오히려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평화번영’과 ‘중도개혁’에 대한 당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이 두 가지 의제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낼 때, 적어도 당권과 정계개편에 매달려 침묵하거나 당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는가.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