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강행 이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농도가 점점 더 진해져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이 단순한 우려의 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한겨레>는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와 같이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이 18일 '일본의 핵무장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을 우연으로 보지 않고 있다"며 "일본의 핵무장에 대응하는 한국의 선택을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핵실험이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오고 그에 대응해 한국도 핵무장 카드를 검토하게 되는 핵확산 연쇄가 더는 가상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뜻한다고 기사는 분석했다.
또 정부 관계자의 이러한 발언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핵심인사들, "핵 보유 논의 필요하다" 이구동성
그동안 일본 집권 자민당과 여당의 핵심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 보유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9월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핵무장 검토의 공론화를 거론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회장으로 있는 세계평화연구소는 지난달 5일 '앞으로 국제사회의 큰 변동에 대비해 일본의 핵무장화를 연구해야 한다'는 제안을 발표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핵우산을 일본에 제공하는 미국의 태도가 반드시 지금처럼 계속될 것인지 예단할 수 없다"며 "핵무기 문제도 연구해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치권의 대표적 극우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도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글을 <산케이신문>에 실은 바 있다.
아베 신조 총리 또한 2002년 와세다대학 강연에서 "소형 핵무기는 보유해도 위헌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뿐만 아니라, 18일에는 아소 외상이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이웃 나라가 (핵무기를) 갖게 됐을 때, (일본이 핵 보유 여부를) 검토하는 것도 안 된다, 의견 교환도 안 된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논의를 해 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핵 보유 논의 필요성을 또 다시 거론했다.
특히 아소 외상의 이번 발언은 지난 15일 나카가와 쇼이치 자민당 정조회장이 "핵을 가지면 공격당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반격도 가능하다"고 주장한지 3일 만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국 정부 "일본의 이런 발언이 어제오늘 갑자기 나온 것 아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우리 정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이런 발언이 어제오늘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난해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그리고 지난해 5월 북한의 핵실험 조짐이 본격적으로 포착되면서 일본은 북한의 핵무장을 전제로 한 대책을 논의해 온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여름 북한의 핵실험 조짐이 다시 포착되자 일본 측은 미국의 정보당국자들을 만나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일본 안에서 핵무장론이 강하게 대두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이날 <한겨레>는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대북 강경론의 배경에 일본 자체의 핵무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동기가 숨어 있다는 의구심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이스, "일본 핵무장은 북핵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
한편 일본의 집권 여당과 정부의 우익 인사들을 중심으로 점화되기 시작한 '핵 보유 논의' 발언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깊은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라이스 장관은 이날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 "미국의 방위 책임을 확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어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뒤 "그것이 지금 일본이 갈 길이 아니라는 점은 아베 신조 총리도 밝혔다"고 지적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도쿄 시내 이쿠라공관에서 아소 외상과 만나 "일본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지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라이스 장관이 서둘러 일본의 '핵 보유 논란'을 진화하고 나선 것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제공 등의 일련의 안전보장 조치의 재확인을 통해 일본의 핵무장 논의를 막고 동북아의 '핵 도미노'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전격적인 핵실험 이후, 전쟁 참여와 자위권 행사를 금지해온 일본의 이른바 '평화헌법'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단순한 안전보장 조치만으로 일본 우파의 오래된 숙원인 '핵 보유' 의지를 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