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도박공화국'이라는 오명으로 밀어 넣은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게임에 대한 논란이 북핵문제의 수면 아래로 잠복해 있는 가운데, 16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이하 문광위)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등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경순 영등위원장에 대해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말로 사퇴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내내 이어진 문광위원들의 책임 추궁에 대해서도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류만 보고 졸속 심의, 국민들에게 사죄하라"
먼저 질의에 나선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사행성 성인오락게임에 대한 영등위의 심의가 형식적이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박 의원은 이의 근거로 유청산 전 영등위 심의위원이 지난 13일 문화부 국감에서 "소위원회 위원 7명 중 3명이 심의를 하고 회의가 끝날 무렵에야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한 명이 와서 (심의의) 내용은 보지 않고 서명만 한 경우가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한 것을 들었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바다이야기 버전 1.1의 변경버전이 심의통과됐던 2005년 4월 7일 회의안건별 심의시간을 보면 180분 동안 무려 108종의 안건이 처리하는 졸속심사였음이 드러난다"며 "결국 이날 건당 평균 1.6분이 소요됐다는 것은 서류만 보고 심의했다는 증언이 사실임을 짐작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의에 나선 김재윤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 위원장을 향해, "바다이야기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할 용의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 의원은 영등위 심사 과정에서 예시연타 기능에 대한 심사가 없었던 점을 거론하며, "바다이야기에 대한 영등위의 공문을 보면 예시연타 기능이 없다고 했는데, 분명히 있다"며 "이는 게임 개발 업체에서 영등위에 제출하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왜 책임을 회피하느냐"고 이 위원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영등위의 '일반심의 합격률'이 2002년 57.5%, 2003년 67.9%, 2004년 71.5%를 나타낸 반면, 같은 기간 '출장심의 합격률'은 각 67.2%, 75.0%, 96.5%에 이른다고 밝히면서 "출장심의 시 게임업체의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영등위 위원장은 "제가 심사를 해본 적이 없다"며 답변을 박찬 부위원장에게 넘겼다. 그러나 답변을 떠 넘기기는 박 부위원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 부위원장은 "문제가 되고 있는 바다이야기 1.1은 제가 등급위원에 위촉되기 전에 등급이 나갔기 때문에 아는 바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위원장은 책임이 없다고 하고, 부위원장은 모른다 하고, 참 한심하다"며, "심의위원 혼자서 심의를 한 것은 명백한 서류 위조이며, 국가기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경순 위원장 사퇴해야 한다"
영등위에 대한 강한 질타는 뒤이어 질의에 나선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과 강혜숙 열린우리당 의원에 와서는 '위원장 사퇴'로까지 번졌다.
이 의원은 질의에서 "사행성 게임을 심의하고 유통시킨 도의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국정감사가 끝나고 위원장직을 사퇴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 위원장을 추궁했고, 강 의원 역시 "지금 영등위는 자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위원장이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진 사퇴론'에 대한 이 위원장의 반응은 '도의적 책임은 느끼나 물러날 수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 위원장은 답변에서 "나도 위원장직에서 사퇴하는 문제에 대해 수없이 고려했고, 여러 존경할만한 분들과 의논을 하기도 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 시점에서 책임을 지고 검찰수사나 감사원 감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조언을 얻었다"고 말해 위원장 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이 위원장의 답변에 대해 감사에 참석한 의원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강혜숙 의원은 "영등위가 정말 안하무인"이라며 "막말로 마지막에 한 판 더 하고 끝내자는 건가"라고 따졌고, 이계진 의원은 "옛날에 가정방문이 있던 시절에 양은공장 하는 학부모가 양은그릇을 줬더니 서무과 직원까지 찾아왔다는 얘기도 있다"며 영등위의 도덕 불감증을 비판했다.
이날 영등위 국감에서는 "안방이 도박장화 되어 가고 있는데 영등위가 한 일이 뭔가", "전후사정을 모르는 위원장이 어떻게 국감에 임하겠다는 것인가", "영등위의 비리는 초등학생도 알 것" 등 영등위를 향한 문광위원들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반면 이 영등위원장은 "영등위만 비판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답변을 수 차례 해, 영등위가 아직 다수의 국민감정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박형준 "경품 금지는 세계적인 추세에 동참 못하는 것"
한편 영등위 국감에서는 '게임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발언의 주인공은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
박 의원은 국감에서 "전 세계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이 추세"라고 밝힌 뒤. "개정 법안에서 성인용 게임에 모든 경품을 금지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박 의원의 주장에 등장한 경품이란 금품으로 교환이 불가능한 형태의 경품"이라고 추가 설명했다고 인터넷매체 <프로메테우스>는 보도했다.
이날 박 의원은 또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대해 "여론에 밀려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약 12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게임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지는 말자"고 주장했다.
현재 박 의원은 사행성 게임업체 후원으로 라스베가스 게임쇼에 참석했다가 국회 윤리위에 제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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