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초강경 기조로 흐르던 한나라당에 서서히 제동이 걸리고 있는 분위기다. 이는 당 내의 소장파인 고진화 의원과 12일 오전 강재섭 대표와 면담을 진행한 전직 4강대국 대사 모임에서 표출됐다.
전직 4강 대사들, "PSI 역할 확대 심각한 문제 발생할 수도"
이날 오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미·일·중·러 등 전직 4강대국 대사들과의 회동에서는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PSI 전면 참여에 대한 일부 참석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회동에는 한승주 전 주미대사와 오재희 전 주일대사, 정종욱 전 주중대사, 이재춘 전 주러시아대사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회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부 참석자가 '한국은 현재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옵저버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역할을 확대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참석자들은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우리 정부가 준수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를 오히려 한국이 받을 수 있고 이는 한국경제에 악영향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하기도 해 전직 4강대국 대사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태의 진행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함을 보여줬다.
고진화 "PSI 부분 참여도 신중해야 한다"
전직 4강대국 대사들에 이어 원희룡ㆍ남경필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소장파로 분류되는 고진화 의원은 이날 배포한 '북한 핵문제, 아직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제목의 의원 칼럼에서, "효과가 미미한 유엔 결의안을 대신하여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할 방침으로 가고 있다"며 "충분한 고려 없이 PSI 참여를 확대한다면 한반도에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북한을 설득해 6자회담의 참여와 재개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참여도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간 정부 측에 'PSI 전면 참여'를 요구해 온 한나라당의 입장과 상반된 주장이다.
또 고 의원이 이 같은 발언은 PSI 참여 수준을 놓고 정부와 열린우리당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참여 확대 불가' 발언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고 의원은 "만일 북한 핵문제가 악화되어 PSI로 인한 해상봉쇄가 전면적으로 실시된다면 북한과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폭된다"는 점을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고 의원은 글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핵실험 발표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질서가 급격히 크게 변화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외양간의 자물쇠가 부숴지기는 했지만 소를 잃은 상황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이어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미국이 불량국가라고 지목한 나라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즉,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유엔헌장 제7장(제재 방안 규정)까지 원용될 수 있는 유엔 결의안이 채택된다면,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헤어나오기 힘든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고 의원은 이번 북핵사태의 해결책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 신 안보질서의 패러다임을 위한 평화선도전략(PIS)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고 의원은 자신이 제시한 평화선도전략(PIS, Peace Initiative Strategy)에 대해서 "전환기에 있는 동북아 질서변화, 심화되는 동북아 상호의존 및 교류, 냉전적 국가 갈등의 지속으로 평화를 위한 새로운 미래구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고 의원에 따르면, 평화선도전략의 실행 전략에는 △중일 간 패권추구 경쟁완화를 위한 화해와 협력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질서 강화를 위한 중간 수준의 안보협력체 구성, 역내 다차원적 경제협력 구축 △IT·교육·인적교류 확대 및 컨텐츠 공유를 통한 문화협력 네트워크 형성 △에너지 공동개발, 환경보호 등 미래지향적 공동체 형성 등이 포함돼 있다.
전직 4강대국 대사들과 고진화 의원 등이 잇따라 PIS 참여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를 냄에 따라, 지난 9일 북한의 전격적인 핵실험 강행 이후 강경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한나라당의 행보에 새로운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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