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문제를 들고 나온 일본 대표단이 6자회담 막판까지 북한과 양자회동을 성사시키지 못하자 `왕따'의 설움을 토로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일본이 납치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밝힌 4차 6자회담 1단계
회의부터 일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번 회담 역
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번 6자회담 개막후 북한은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등 4개국과는 양자회담
을 열었으나 일본과는 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덕분에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 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필두로
한 일본 대표단은 이번 6자회담에서 가장 여유로운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일본은 북
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으나 북한은 이
에 대해 전혀 대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까지 나서 "북한은 일본과의 양자 문제들을 푸는
대화에 먼저 응하지 않으면 (북한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
다"면서 북일 양자회담 개최를 촉구하기도 했다.
6자회담 취재를 위해 200여 명의 기자를 파견한 일본 언론도 회담의 진전이나
성과보다는 북일 양자접촉의 성사 자체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 대표단과 같은 숙소를 사용하고 있는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
관보도 20일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 외에도 일부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
도 지향하고 있다"며 "관계정상화 절차는 현안의 논의에 달려있으며 일본은 거론할
필요가 있는 일부 현안을 갖고 있다"고 거들었다.
북한은 결국 회담 마지막날 중국이나 미국의 중재로 형식상 한차례 접촉을 갖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의 협상에 남은 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해야 하는
만큼 일본과의 양자접촉이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일본은 `잘못된' 독자 의제설정으로 인해 스스로 6자회담에서 갈수록 입지
를 좁히며 북핵 문제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미국 등 다른 국가를 통해서 밖에 관철시
키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북한으로선 핵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에서 `엉뚱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
하겠다고 하는 것도 심사가 뒤틀리는데 핵실험 이후 일본이 대북 무력사용의 근거를
제공하는 제재안 초안을 제출하거나 독자적인 대북제재에 나서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강경여론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회담 개막후인 19일 "6자회담 재개를 세계가 환영하고 있지만
일본만이 거기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앙탈질을 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논평
을 올렸다.
6자회담 복귀를 선언했던 지난달 4일엔 외무성 대변인 발언을 통해 "일본이 6자
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라는 말까지 내놨다.
'대미관계가 해결되면 미국에 철저히 추종하는 일본도 어차피 미국을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북한의 대일 외교인식도 6자회담에서 `일본 따돌리기'의 배경
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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