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한은 스와프시장 개입해야"..한은은 난색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 작년 말 심각한 원화 자금난을 겪었던 시중은행들이 이번에는 외화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글로벌 신용시장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대외내적인 요인들이 겹쳐지면서 국내 은행들의 외화난이 악화하고 있다.
지난달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로 인한 여파가 지속하고 있는 데다 올 들어 외화대출 용도규제가 일부 완화되면서 만기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가운데 `달러 부족'의 원인과 해결책을 놓고 통화당국과 시중은행들이 입장도 확연히 갈리고 있다.
◇ 여건은 개선됐는데 달러는 없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은행의 단기 외화차입 가산금리는 2월중 0.21%포인트에서 이달 초 0.52%포인트까지 상승했다가 이번 달 7~11일 0.42%포인트로 떨어졌다.
가산금리가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들이 해외에서 외화를 빌리기 쉬워졌다는 뜻이다.
중장기 외화차입 여건을 나타내는 우리나라 5년만기 국채의 CDS(지급보증증권) 프리미엄도 지난달 20일 1.09%포인트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며 18일에는 0.74%포인트로 떨어졌다.
하지만 지표와 달리 정작 은행들은 외화를 구하기 어렵다며 아우성이다.
지난주 기획재정부가 시중은행의 자금부장들과 회의를 열어 해외 자금조달 상황을 점검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A은행 자금부장은 "외화를 아예 조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으로 외화대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난주 3개월 물의 가산금리가 0.90~ 0.95%포인트였으니 실제로 차입여건이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자금 여건에 맞춰 극히 선별적으로 외화대출을 하고 있다.
기업은행이 지난달 25일 신규 외화대출을 중단하는 등 대부분 시중은행들이 만기연장 위주로 제한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B은행 기업금융 담당자는 "자금부에서 영업부로 배정하는 자금이 적다 보니 대출요청이 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업체들의 실수요 시설자금도 여유가 되는대로 그때그때 대출이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외화난 원인.해결책도 엇박자 = 최근 외화 자금난의 배경에 대해서도 통화당국과 시중은행들 간에 적지 않은 온도차가 있다.
한은은 시중은행들이 외화자산 운용을 줄여서 외화유동성을 조절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화대출 영업은 지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차입여건이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해외에서 단기차입금의 롤오버(만기연장)가 어려우면 외화자산의 운용을 줄여야 했다"며 "영업은 계속하면서 비싼 가산금리는 부담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의 외화대출 잔액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등 5개 은행들의 달러대출 잔액은 17일 현재 127억8천만 달러로 올들어 2억100만달러가 늘었다. 엔화대출도 작년 8월 한은의 외화대출 용도규제가 실시된 이후 지난 2월까지 1천994억원이 줄었지만 3월부터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한은이 1월 비제조업체에 대한 시설자금의 외화대출을 허용하고 지난달 상환기일의 연장을 허용하는 등 용도규제를 일부 완화하면서 만기가 도래한 외화대출이 상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C은행 관계자는 "잔액이 늘고 있는 것은 대출상환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으로 신규 대출은 안되는 상태"라며 "잔액이 줄지 않았을 뿐 증가 폭도 미미하기 때문에 증가세는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해결책에 대해서도 시중은행과 당국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한은이 통화스와프 시장에 참여해 외환보유액을 풀어 달러부족을 해소해 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한은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외화를 조달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금융연구원 박해식 연구위원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구조적으로 불확실성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며 "외화차입이 완전히 안된다기 보다는 지급해야 할 가산금리가 높다는 것인데 이같은 달러 자금난은 상반기까지는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중은행 외화대출 잔액
(단위 = 억엔, 100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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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월말│ 12월말 │올 1월말│ 2월말 │3월말 │4월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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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대출 │ 10,623 │ 8,763 │ 8,694 │ 8,629 │8,703 │ 8,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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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대출 │ 12,338 │12,579 │ 12,564 │12,688 │12,761 │12,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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