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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
우승 뒤 아내 생각에 눈물이 핑 돌기도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예순 다섯 나이에 생애 처음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SK 와이번스의 김성근(65) 감독.
남들은 이미 은퇴해 조용하게 노년을 보낼 시기지만 그는 아직도 국내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승부사로 `야구의 신(神)'이라 불릴 만큼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31일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김성근 감독은 "야구에 신은 없다"고 말했다.
"정규리그든, 포스트시즌이든지 여유를 갖고 경기를 하는게 중요하다. 여유가 있으면 그라운드도 크게 보이고 발상의 전환도 돼 경기를 훨씬 잘 풀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스무살때 한국으로 건너 온 김 감독은 동아대와 교통부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실업팀 및 고교 감독을 거쳐 1984년에는 OB 사령탑에 올랐다.
이후 김감독은 태평양(1989~1990), 삼성(1991~1992), 쌍방울(1996~1999), LG(2001~2002)를 거친 마침내 SK에서 24년 맺힌 한(恨)을 풀었다.
국내 최고령 감독이자, 최다 팀을 맡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단 1개의 우승반지가 없었던 그에게는 이번 우승에 남다른 감회가 있을 법도 한데 "이제 코나미컵도 준비해야지, 2군 훈련스케줄도 내년 시즌도 대비해야지..정말 쉴 시간이 없네"라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그는 "이번 우승은 나보다 아내와 자식들이 더욱 원했던 것 같다. 집사람과 아들,딸들이 내가 마지막 꿈을 이뤘다고 진짜 기뻐한다. 우승한 뒤에도 담담했는데 갑자기 와이프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며 평생을 그라운드에서 살아온 승부사지만 뜨거운 가슴도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부인 오효순(60)씨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큰 딸 미화(40)씨는 영어번역작가, 큰 아들 정준(37)씨는 SK야구단 전력분석팀장, 작은 딸 희성(36)씨는 한국외국어대학 동시통역대학원을 다니며 일어번역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과 일문일답.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뭐가 떠올랐나.
▲정대현이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우승이 결정됐는데 이상하게 그리 감동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규리그를 1위를 확정짓는 순간이 더 긴장했던 것 같다. 그 때는 계산상 역전당할 수 없었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 초반 2연패를 당했는데 그때 심정은 어땠나
▲1,2차전을 진 것은 다 내 탓이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에 졌는데 2차전을 지고 나서는 새벽 2시 반까지 감독실에 있다가 밥을 먹고 4시 반쯤 집에 들어갔다. 그 때 곰곰이 생각해 보니 7차전을 하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려면 4승이 필요하고 4패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래 한번 더 져도 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4연패를 당하면 곧바로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했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심적인 여유를 가져와 3차전부터 훨씬 편한 마음으로 경기할 수 있었다.
--1,2차전에 부진했던 김재현과 정근우, 박재상 등을 3차전부터 중용했는데
▲2차전 다음 날은 이동일이라 자율훈련이었는데 운동장에 나가보니 김재현과 정근우, 박재상 등이 땀을 흘리고 있더라. '이 친구들이 정말 하려고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일부터 무조건 선발 기용하겠다고 결정했다.
--언제 우승할 수 있다고 확신했나...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우승에 대한 집착은 없었다. 다만 6차전 아침때 `오늘은 큰 게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딸이 `아빠 긴장 돼, 긴장 돼'하고 걱정했지만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정규리그와 비교해 한국시리즈는 팀 운영 방법이 달라졌다는 평을 들었는데
▲2차전이 끝난 뒤 머릿속에 바뀐 게 많다. 무엇보다 데이터에 너무 치우치지 말자고 했다. 예를 들어 박재홍은 시즌때 리오스 상대로 13타수 무안타였지만 그냥 기용했다. 단기전에서는 데이터보다도 선수들의 `기'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3차전부터 6차전까지 팀 타선이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은 한 번 이겼기 때문에 밀고 나간 것이 아니라 매 경기 새로 짰지만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순이 똑같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때 언론에서는 김감독을 '야구의 신'이라고 표현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야구에 신은 없다. 다만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여유를 갖느냐는 것이다. 김응용 사장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은 나를 이겼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당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김응용 감독이 무척 크게 느껴졌는데 막상 경기를 하니 저쪽도 조급한 것은 똑같아 보이더라. 그게 보이고 나니 여유가 생겼고 자신있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발상의 전환을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은 2002년 한국시리즈때 당시 LG를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과 상대한 김응용 삼성 감독이 우승을 차지한 뒤 "마치 '야구의 신'하고 붙는 것 처럼 어려웠다"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쌍방울이나 LG시절에는 구단 고위층과 자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올해는 달라진 모습이라고 한다.
▲과거 내가 구단 고위층과 마찰을 빚었던 것은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수단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 아무리 못한 팀이라도 항상 4강까지는 끌고 갈 자신이 있다. 그런데 프런트에서 이렇게, 저렇게 간섭을 하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런 일들 때문에 지난 해 SK에서 감독 제의가 왔을 때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세계에서 떠나고도 싶었다.
--그럼에도 SK 감독을 맡게 된 배경은
▲내가 SK 감독을 맡게 된 것은 가족들 때문이었다. 나 없는 사이 가족회의를 열어 '아빠는 무조건 다시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나보다 우리 가족이 우승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평생 야구장에 사느라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짜가 며칠 되지도 않는데 가족들이 너무 헌신적으로 도와줬다. 올시즌 내 아내와 딸들은 서울 성수동 집에서 감독 숙소가 있는 인천 송도까지 매일 교대로 오가면서 아침 밥까지 해줬다. 이번에 우승하고 나서도 가족들이 나보다 더 기뻐했다.
우승하고도 담담했는데 인터뷰장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와이프 생각이 나 눈물이 핑 돌더라.
--아들과 LG에 이어 SK에서도 한 팀에서 생활하는데(아들 김정준은 2003년부터 SK 전력분석팀장을 맡고 있다)
▲아들이 나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SK 감독으로 오면서 아들에게는 일본 연수를 다녀오라고 했다. 상당히 좋은 기회였는데 아들은 안간다고 하더라. 이번이 아버지와 함께 야구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며.한국시리즈에서 2연패를 당하고 나니 아들이 머리까지 빡빡 밀고 왔더라.
--쌍방울 감독을 맡았을 때는 1년에 집에 세번 들어갔다고 들었다. 평생 감독직을 맡느라 아무래도 가정에는 소홀했을 텐데
▲우리 얘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평생 가정에는 열심히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가족들이 너무 나에게 헌신적이다. 1,2차전을 지고 나니 가족들이 모두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끝까지 잘하자고 힘을 모아줬다. 우승하고 난 뒤 와이프에게 전화걸어 '고맙습니다. 당신 덕에 이겼습니다'라고 말했다.
--올시즌 야구관 뿐 만 아니라 여러모로 많은 변했다는 얘기가 많은 데
▲동기였던 김응용 사장이 현장을 떠난 뒤 어느새 내가 최고령자가 됐다. 이제는 내가 단지 SK 감독만이 아니라 야구계의 원로이다 보니 나 혼자보다는 야구계 전체를 보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곱게 늙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만수 수석코치와는 어떻게 호흡을 맞췄는가
▲솔직히 우리 팀에서 내가 가장 혼을 많이 내는 사람이 이만수 코치다.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이틀전에도 불러 2시간 동안이나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가 장차 프로야구 감독으로 팀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내가 떠나더라도 좋은 지도자를 배출하고 싶어 때로는 냉정하게 혼을 많이 내기도 한다.
--이번 시리즈에서 최태원 SK 회장이 세차례나 야구장을 찾아 화제가 됐는데
▲3차전때 회장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오늘은 지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프로야구가 발전하려면 아무래도 구단주들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줘야 하고, 선수들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승이 확정된 뒤 최태원 회장과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수고하셨다'고 하더라.
--코나미컵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한국시리즈때 일본 기자들이 코나미컵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국과 일본이 국가대표끼리 붙으면 해 볼 만 하지만 프로 팀끼리는 아무래도 조금 처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야구도 많이 발전해 베스트 선수들만 모으면 일본과 비슷했지만 각 팀 전력은 아무래도 층이 얇다.
그렇다고 이번 코나미컵을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이번에는 SK 팀이 아닌 한국야구를 대표해서 나가는 만큼 팬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경기를 펼치겠다.
shoele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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