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합리적이고 애정 어린 비판과 맹목적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양정철 비서관이 지난 6일 ‘청와대 브리핑’에 ‘하이에나 행태로는 정론지 못된다’는 글을 올린 후, 그간 보수언론에 의해 ‘친노매체’로 규정돼 왔던 인터넷 매체 기자들의 반응이다.
“조중동 프레임에 갇힌 건 우리가 아니라 청와대다”
한 기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실책을 비판하는 언론이 하이에나라면, 그런 언론의 먹잇감인 정부·여당은 죽은 고기라는 뜻이냐”고 양 비서관의 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또 “양 비서관이야말로 현재의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은 고기라고 인식하는 것은 아니냐”고 꼬집고, “사사건건 ‘친노’와 ‘반노’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사로잡힌 양 비서관은 경향신문이나 한국일보를 향해 ‘조중동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비서관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의 기자들 역시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오히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씌워놓은 ‘친여’와 ‘친노’의 이미지를 벗게 돼 다행이다”며 양 비서관을 조소했다.
이들은 또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대통령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청와대 비서관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만을 찾아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니냐”며 양 비서관을 비판했다.
그간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친여’ 혹은 ‘친노’라는 프레임을 이용해 다른 언론매체의 보도태도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들 보수언론은 자신들은 ‘비판언론’으로 규정하고,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데일리서프라이즈> 등의 온오프 매체를 일괄적으로 ‘친여’나 ‘친노’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이들 언론이 과연 ‘친여’ 혹은 ‘친노’라고 일괄 규정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최근의 한미FTA 문제 등에 있어서 이들 언론은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해왔다.
반면,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찬성의 입장을 보여 왔다. 적어도 이들 문제 관해서만큼은 조중동 등이 ‘친여매체’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인터넷 매체의 기자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아마도 청와대에서 우리와 같은 논조를 지닌 언론보다는 조중동 등을 너무 많이 본 것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즉, ‘조중동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의 청와대가 오히려 ‘조중동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양정철 비판에 <경향>, <한국> ‘발끈’
한편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 6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 ‘하이에나 행태로는 정론지 못된다’에서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의 논조를 문제 삼았다.
양 비서관은 글에서 “그동안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던 신문들조차 자극적이고 표피적인 비방대열에 합류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합리적인 잣대나 이성적 판단 없이 쏟아내는 비방은 언론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의 지지가 낮다고 해서 대통령 비방하는 것을 흥행으로 삼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는 아니다”며 “정치권과 언론의 그 같은 행태는 하이에나의 속성을 연상시킨다”고 두 신문의 논조를 비판했다.
“신문은 언론기업이지 흥행기업이 아니며 누구를 희생양으로 해서 자극적인 제목과 선동적인 편집으로 손님을 끌면 안된다”는 게 양 비서관 주장의 핵심이다.
이날 양 비서관이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지난 6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도탄’에 빠진 민생 / ‘승부’에 빠진 노심”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기사는 일용직 노동자 김철웅 씨의 고단한 삶과 최근 정계개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관측되는 노 대통령의 행보를 대비시켰다.
양 비서관이 이 기사에 대해 ‘하이에나 언론’이라는 격렬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문제 삼고 나서자, 경향신문은 다음날인 7일 지면 하나를 전부 동원해 양 비서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향신문은 ‘대통령이 출국 전에 쓴 편지 한 통만 갖고 순방외교 중인 대통령 등 뒤에서 정치올인에만 골몰하고 국정 마무리를 외면한다고 단정한 근거’를 따져 물은 질문에 “대통령은 임기 관련 언급을 한 국무회의에서나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나 조류인플루엔자, 부동산 가격 급등,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을 설명하거나 염려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열린우리당은 순방외교 돌입을 기점으로 당·청 갈등의 냉각기에 들어갈 뜻을 밝혔다”며 “그럼에도 편지글을 공개한 것은 여당의 의원설문조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느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것이야말로 정치 올인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대통령의 지지가 낮다고 해서 대통령 비방을 흥행으로 삼는 것은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국정 혼선 때문이고,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에 비해 한국일보는 다소 점잖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양 비서관이 글에서 지난 6일자 한국일보의 “여와 싸움 나선 노, 국정 팽개치나”라는 기사를 비판하자, 한국일보는 7일자 기사 “양정철 비서관, 본보 ‘여와 싸움나선 노’ 기사 / ‘하이에나식 보도’ 원색비난”에서 양 비서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한국일보는 양 비서관이 “대통령의 편지 한 통에 요동을 치는 신문들이 있다…합리적 진보 혹은 중도를 표방하는 신문들조차 중심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며 “대통령의 메시지를 폄훼하고 정쟁의 소재로 삼으려는 정치세력이나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등 한국일보 기사에 대해 강한 적의를 표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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