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구순기자][당장 美수출엔 큰 지장 없을 듯… '당사자' 퀄컴은 묵묵부답]
퀄컴이 경쟁사인 브로드컴의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퀄컴의 반도체칩을 사용한 휴대폰의 미국 수입이 금지됐다는 악재가 날아들어 국내 휴대폰 업계가 한바탕 북새통을 치뤘다.
휴대폰은 단일품목으로 지난해 168억달러의 수출을 기록, 총 3260억달러에 달하는 우리나라 전체수출액의 5% 가량을 차지하는 '수출효자' 품목이다. 때문에 휴대폰 수출이 타격을 입는 것은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
그러나 이번 수입금지 조치가 당장 미국 휴대폰 수출길이 막히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이번 조치 이전에 삼성전자나 LG전자, 팬택 같은 업체들이 대응방안을 마련해 놨다는 소식에 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다만 특허분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새벽녘부터 다른나라의 경제계를 '들었다 놓은' 이번 사건의 장본인 퀄컴은 이번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거나 이 문제로 피해를 입게될 고객사에 대해 어떤 보상책을 마련하겠다는 등의 이렇다할 공식 입장 발표조차 없이 입을 다물고 있어 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휴대폰 산업이 퀄컴이라는 단일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산업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심도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퀄컴, 공식 입장발표 없어 국내업계 속만 끓여
미국 국제무역협회(ITC)는 7일(현지시간) 퀄컴이 브로드컴의 특허기술을 침해해 이 기술을 적용한 퀄컴의 반도체칩이 내장된 신형 휴대폰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ITC의 이번 결정은 60일 이내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면 즉시 시행된다.
ITC의 판결에 대해 퀄컴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사 칩을 사용하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에게 새로운 칩을 언제부터 대량공급할 수 있다거나, 휴대폰 설계 변경에 대한 비용 문제를 보상한다는 등의 언급이 없는 것.
한국퀄컴 관계자는 "미국 본사가 입장을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 뭐라 할 말이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휴대폰 업계에서는 "가장 최선의 방안은 지금이라도 퀄컴이 브로드컴과 화해를 통해 특허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퀄컴이 이미 브로드컴 특허와 관련없는 새 칩을 개발해 놓은 상태인데다 지난해 ITC의 화해권고가 수용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화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결국 퀄컴이 어떤 입장을 내놓는지에 따라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휴대폰 설계계획이 바뀌는데도 퀄컴이 입을 다물고 있어 속만 끓이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번과 같은 사례가 끊임없이 반복될 소지가 있다는 점. 휴대폰 산업이 IT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업체간 특허소송이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다.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핵심칩의 100%를 퀄컴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처럼 퀄컴이 특허소송에서 패배하는 등 재채기만 하더라도 국내 휴대폰 산업이 휘청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퀄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휴대폰 산업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심도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 특허침해 사건, 직접피해는 없을 듯
특허침해 판정을 받은 기술은 휴대폰 배터리의 사용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기술로 휴대폰이 음영지역에 있을 때 기지국과 신호를 주고받는 횟수를 줄여 배터리 수명을 연장하는 것. 이 기술은 퀄컴의 MSM 6200, 6300 칩에 사용됐으며, 이 칩은 3세대(G) 휴대폰에 사용된다.
이번 특허소송은 1년 이상 끌어온 것으로 퀄컴의 패색이 짙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퀄컴 칩을 사용하는 국내 휴대폰 업체들도 여러차례 화해를 통해 특허분쟁을 마무리 지어줄 것을 퀄컴에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TC도 지난해 10월 양사에 화해를 요청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결국 양사가 화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로 인해 국내 휴대폰 업계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까?
일단 눈에 띄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번 ITC의 판결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휴대폰에만 적용되고 현지시간 6월 7일 이후에 새로 수입되는 모델에만 적용된다. 이전에 이미 미국시장에 나가 있는 휴대폰 모델은 현재상태 대로 계속 생산해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발할 새 휴대폰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퀄컴이 특허소송에 질 것에 대비해 브로드컴 특허와 관련이 없는 새 칩을 개발해 휴대폰 제조업체들에게 공급했다는 것. 국내 업체들도 새 칩으로 휴대폰 설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간접비용과 시간적 피해는 막대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는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새 칩을 적용한 휴대폰을 만들어 미국에 판매한다 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의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휴대폰 기능의 핵심인 퀄컴 칩의 작은 기능 하나만 바뀌더라도 연결돼 있는 수만가지의 소프트웨어(SW)와 연동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휴대폰 설계부터 SW연동실험까지 모두 새로운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또 퀄컴이 브로드컴의 특허와 관련 없는 새 칩을 양산해 휴대폰 업체에 공급하기까지도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휴대폰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내놓아야 하는 '시간싸움'이 관건인 휴대폰 시장구조에서 개발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점은 막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 휴대폰 업계는 이번 ITC의 판결에 대해 미국 연방법원에 수입금지 보류 신청을 내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구순기자 caf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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