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권성희기자]이택순 경찰청장이 국회에 출석해 거짓 증언한 사실을 시인했음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 청장 감싸기'가 계속될지 주목된다.
이 청장은 전날(29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29일 고등학교 동창인 유시왕 한화그룹 고문과 통화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청장은 유 고문이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어보자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밝혔다. 유 고문과 전화 통화는 했지만 사건에 대한 청탁은 없었다는 해명이다.
문제는 이 청장이 유 고문의 청탁을 받았는지 여부가 아니다. 이 청장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할 때 한화그룹측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점과 거짓말한 사실 자체에 별다른 심각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청장은 지난 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으로부터 "사건 이후 (유 고문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청장은 "본 건과 관련해서 만난 적 없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그 외에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없느냐"고 거듭해 묻자 다시 "없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전혀 없느냐"라고 재차 물었을 때도 "네"라며 '없다'고 답했다.
경찰청 감사관실도 김 회장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늑장수사 감찰 결과를 발표할 때 이 청장과 한화그룹 유 고문이 통화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경찰 감찰 대상에 아예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에 대해 감찰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 고문과 통화를 하고도 모른 척 넘어갔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盧대통령, 이택순 청장 퇴진론에 대해 '희생양 만들기' 비판
이 청장이 국회에서 거짓 증언한데 대해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노 대통령은 한화그룹의 유 고문이 이 청장과 통화한 사실을 시인했다는 내용이 공개된 이후인 전날 국무회의에서 "임기제 경찰청장의 거취 문제는 정상인의 판단력을 갖고 봤을 때 의심할만한 어떤 혐의가 나왔을 때 논의하는게 순리"라고 말했다.
국회에 출석해 거짓말한 사실에 대해 "정상인의 판단력을 갖고 봤을 때 의심할만한 어떤 혐의"라고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무슨 사건만 생기면 희생양을 요구하는 풍토가 걱정스럽다"고 말해 거짓말을 한 이 청장이 오히려 희생양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전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고위 공무원이 국회에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사임 사유가 아니냐'고 질문하자 즉답을 피한 채 "거짓말 여부도 정확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거짓말 논란과 관련, "사실 여부를 좀더 보겠다"며 "저희로서는 사퇴시킬 명백한 이유가 확인된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청장의 거짓말은 '명백한 사임 사유'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회사 5배로 키운 CEO, 거짓말 때문에 퇴진
지난 5월1일 영국 최대 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최고경영자(CEO) 존 브라운이 불명예 퇴진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브라운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보도하려던 영국 타블로이드지에 대해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브라운은 이 소송에서 동성애 애인과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브라운이 법원에서 거짓 증언한 사실이 드러났고 브라운은 41년간 몸 담았던 회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브라운은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비판을 받고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법원에서 거짓말했다는 점이 CEO로서 심각한 흠결이란 지적을 받고 퇴진한 것이었다. 브라운은 퇴직 성명에서 "부끄러움과 충격 때문에 거짓 증언을 했다"고 고백했다.
브라운은 1995년 BP의 CEO에 오른 뒤 위기에 빠져 있던 회사의 가치를 5배로 키워냈으나 이러한 뛰어난 성과보다도 정직성이 더 중요하다고 영국 사회는 판단했던 것이다.
거짓말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청탁은 없었다"는 점만 내세우는 이 청장이나, 거짓말을 한 고위 공직자를 감싸는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존 브라운의 사례를 어떻게 생각할까.
기업이란 사적 조직에서조차 질서를 세우는 기본으로서 '거짓말'을 엄중히 다스리는데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한 나라 15만 경찰조직의 총수란 사람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한 참여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권성희기자 s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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