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양영권기자][전현직 사장 징역형 선고.. 이건희 회장 공모여부 판단 유보]
1996년에 이뤄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의 CB 취득은 법적인 정당성이 없었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같은 위법한 행위에 대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이 공모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조희대 부장판사)는 29일, 삼성에버랜드(옛 중앙개발) CB 저가 발행을 통한 지분 변칙 증여를 주도한 혐의(특경가법의 배임)로 기소된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전 상무)에 대한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5년, 벌금 3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사의 임무를 위배해 CB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에게 몰아서 배정, 이 전무 등에게 89억4000만여원의 이익을 취하게 하고 그만큼 손해를 끼친 점이 인정된다"며 특경가법 위반죄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회사의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했었다.
재판부는 ▲CB 발행을 결정한 1996년10월30일 이사회 결의의 무효 여부 ▲CB 전환가격의 적정성 ▲이 전무 등에 대한 배정의 위법성 여부 등의 판단에 있어 모두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이사회 결의는 미국에 출장중에 있었던 조모 이사가 출석한 것으로 돼 있어 "애당초 정족수 미달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족수 미달로 무효인 것을 알면서도 유효인 것처럼 해서 CB를 발행한 것은 이사의 임무 위배"라고 밝혔다.
또 CB 전환 가격에 대해서는 당초 에버랜드 주식이 거래된 사례, 순자산가치 평가법에 다른 추정, 주주들의 장부에 나타난 주식 가격 등을 들어 "모든 사정을 감안해도 적정 전환 가격은 1만4825원"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실제 CB 전환 가격 7700원과의 차이를 감안해 회사의 손해액 산정이 가능하다는 것.
아울러 이 전무 등에 CB를 배정한 것에 대해서는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 전무 등에게 현저히 낮은 가격에 배정한 것은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 임무 위배"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존 주주들이 실권을 했을 뿐이지, 회사의 경영권 역학관계에서 중요한 변경을 요하는 지분을 특정인에게 몰아주는 것을 승인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건희 회장 등 회사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이같은 절차를 진행했는지, 이른바 '큰 틀의 공모'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사가 공소사실로 삼지도 않았다"며 "피고인이 임무를 위배해 손해를 끼친 이상 기존 주주와의 공모 여부와 상관 없이 배임죄는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측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허태학 사장은 "판결 결과에 대해 변호인과 상의해 다음 절차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허씨 등은 1996년 11월 에버랜드 CB 99억원어치를 발행한 뒤 제일제당을 제외한 다른 주주들이 실권한 가운데 이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남매에게 싸게 배정, 97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회사에 끼친 혐의로 2003년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해 허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양영권기자 inde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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