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김진형기자][에버랜드 CB발행 원상복구 힘들어…지배구조 개선여론 부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 대해 2심 법원이 29일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당장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는 없다. 당시 CB 발행을 원상 회복시킬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의 정당성이 또다시 문제가 된 이상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여론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는 에버랜드 CB를 이재용 전무에게 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전무는 1996년 11월 당시 제일제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주주들이 배정된 CB를 실권하자 96억원 어치의 CB를 주당 7700원에 3자 배정받았다.
이 전무는 같은해 12월 CB를 전부 주식으로 전환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후 에버랜드는 97~98년 사이 삼성생명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되고 이를 통해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라는 지금의 순환출자 구조가 완성됐다.
재판부의 이날 판결은 이 같은 삼성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과정의 시발점이 된 에버랜드 CB 발행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CB 발행 이사회 의결 자체가 무효였고 현저히 낮은 가격에 CB를 이 전무에게 배정함으로써 회사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
하지만 이를 원상복구시킬 방법은 마땅치 않다. CB 발행 자체를 무효화 시키기 위해서는 발행 이후 6개월 이내에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해야 하지만 이미 시간이 지나버린 상황이다. 게다가 당시의 주주들이 소를 제기해야 하지만 당시 에버랜드 주주들은 모두 삼성 계열사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소송 제기도 기대하기 힘들다. 법조계 관계자는 "유죄판결이 나더라도 CB 발행 자체를 되돌릴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CB 발행으로 손해를 본 주주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 이미 참여연대가 이건희, 현명관씨 등 제일모직㈜ 전현직 이사 및 감사 15명을 상대로 에버랜드 CB를 실권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번 선고 결과가 삼성의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여론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장까지 나서 삼성 지배구조 개선을 권고하고 있는 마당에 법원으로부터 정당성까지 부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 등 본격적인 수사를 예고하고 있어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허태학,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게 유죄를 확정시켰지만 이 사건의 실질적인 종착역은 이건희 회장 등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를 밝히는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당초 2000년 6월 전국 법학교수들이 고발한 33명 가운데 허태학 사장과 박노빈 사장만 2003년 12월 기소했으며, 이건희 회장과 다른 계열사 대표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진행만 중지한 채 사법 처리를 미뤄 왔다.
김진형기자 jhkim@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