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도, 인문대학에 입학했을 때 수도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 대부분의 사상 계간지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논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니 “아직도 인문학의 위기인가”라는 말들이 무성하다, 2007년에 들어서자 더 이상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 자체도 나오지 않는 판이다.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라는 말은 진실일까? 인문학의 위기는 물질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탓일까? 인문학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은 뒤떨어진 학문일까? 그렇다면 경영학이나 경제학과 같이 돈 되는 학문에 뛰어드는 학생들은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일까?
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든 명제를 선입관에 의한 잘못된 오답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 아닐 수도 있고, 인문학이 물질주의적 세태 때문에 퇴보한 것도 아니고, 디지털 시대에 퇴보한 학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문학의 기초 분야는 문학과 언어라는 말이 있다. 철학, 역사학, 미학, 종교학 등을 공부하기 위해선 고대 때부터 인간의 삶을 탐구해온 수많은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문학을 읽기 위해서는 언어 학습이 필수적이다. 언어 학습이란 영어 같은 외국어만 의미하지 않는다. 최소한 국어라도 똑바로 알아야 수많은 단어로 구성된 문학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읽는다는 의미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전 인류가 살아온 삶의 행태와 언어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발작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는다면 19세기 프랑스에서 귀족사회가 신흥부르주아 시대로 넘어가는 현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리얼리즘이라는 이론부터, 프랑스의 근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다.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철학과 역사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학과 언어를 습득하면서, 철학과 역사학을 공부한다면, 흩어진 삶의 모습들을 일정한 이론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문학의 교양과 깊이를 알아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나간다는 의미이다.
만약 대학 4년 간 이런 학습을 제대로 해낸 학생이 과연 사회적으로 무능력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돈이 된다는 학문인 경영학의 원리는 결국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포장마차 한번 운영해본 적이 없는 학생이 경영학의 원론만 공부해서 과연 경영학을 제대로 현실에 실천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삶과 현실에 대한 이해를 탄탄히 한 학생이 경영학을 공부한다면 훨씬 더 현실 적합한 이론과 실천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21세기는 그야말로 범 글로벌 시대이다. 웬만한 중소기업을 하려고 해도,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사업을 확장해나갈 수 없다. 미국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미국의 문학과 미국의 철학을 공부하는 게 도움이 안 될까? 오히려 세계사의 흐름을 읽고 앞으로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예측하는데 전 세계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필수 항목이 아닐까?
현재 전 기업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한류마케팅만 해도, 인문학이나 문화적 관점 없이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인터넷, 뉴미디어 등만 하더라도 새로운 문화와의 소통이라는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사업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측면에 있다. 인문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바로 이러한 인문학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고 졸업하느냐는 것이다. 역사학을 4년 배웠다고 해서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고, 철학을 4년 배웠다 해서 철학적 깊이를 더 알고 사회에 뛰어들 수 있는가?
인문학은 실용학문인, 법학, 경영학, 심지어 경제학, 사회학과 같은 사회과학을 공부하기 위한 필수과목이다. 삶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삶을 제도적으로 규율하는 법학을 어떻게 공부하겠냐는 것이다.
앞으로 인문학에 대한 논의는 방향을 다시 잡아야할 필요가 있다. 지금 대학에서 인문학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냐는 것이다. 제대로 교육이 되지도 않으면서,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니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때리는 격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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