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8일 국무회의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하고 나서 정치권에 메가톤급 파장을 던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기중 당적을 포기하는 4번째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대통령 하야'를 의미하는 임기중 사퇴 가능성을 발언의 행간에 녹인 것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일제히 "국민을 불안케 하는 협박 발언"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설마 진짜 물러나겠느냐'는 의구심이 깔린 것도 사실이다. 임기와 당적 등 거취문제를 걸어 정치적 곤경을 돌파하려는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수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깜작 발언'이 대통령 특유의 성정과 여소야대라는 정치상황 등과 어우러져 정치적 고비 때마다 반복됐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노 대통령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금기시됐던 임기 문제에 관해 의중을 드러낸 것은 취임 후 불과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2003년 5월이었다. 당시 5.18 행사추진위 간부진과의 면담에서 "전부 힘으로 하려 하니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
참여정부 출범 후 사회적 갈등이 일거에 분출하던 와중에 원내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공격한 데 대해 푸념조로 한 발언이었지만 워낙 파장이 크자 노 대통령은 "안정감을 훼손할 만한 일을 했다"고 주워담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해 10월 측근비리로 다시 임기 문제를 언급하게 된다.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사건이 터지자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전무후무'한 선언을 한 것이었다.
재신임 파동은 노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투표를 한나라당이 우왕좌왕하다 거부하면서 막을 내렸지만,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달라"는 말실수가 빌미가 돼 2004년 3월 야 3당에 의해 탄핵을 당했고, 두 달여간 청와대에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보내야 했다.
신중치 못한 언행이 초래한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임기 공백이었다.
탄핵사태를 계기로 노 대통령의 임기 발언은 자취를 감추는 듯 했으나 지난해 4.30 재보선으로 여대야소 구도가 붕괴되면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가 고질적인 지역구도에서 비롯됐다며 그해 7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는데, 그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것.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꿈쩍도 않자 8월30일 여당 의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2선 후퇴나 임기단축을 통해 노무현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결단도 생각해봤다"며 발언의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결국 연정 제안이 거부당하고 여당의 지지율 추락과 함께 대통령 임기가 후반기로 들어서자 관심의 초점은 대통령 당적문제로 옮겨갔다.
우리당은 거듭된 재보선 패배에 대한 처방으로 민주당과의 합당을 거론하며 하나 둘씩 대통령의 탈당 필요성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노 대통령도 비공개 자리에서 탈당의사를 밝혔으나 지도부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접었다.
그러다 여당이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신당론이 급부상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노 대통령은 "탈당은 절대 하지 않겠다. 임기 후에도 백의종군하겠다"(8월6일 여당 지도부 회동),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국정운영의 끈을 놓지 않겠다"(11월6일 시정연설)며 당적에 강한 집념을 보였지만 지지율 추락 속에서 청와대를 보는 여당의 태도는 갈수록 냉담해졌다.
결국 11월 대선정국의 길목에 이르자 유력 대권주자들은 앞다퉈 "열린우리당의 실험은 실패했다"며 노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를 본격화하고 나섰고, 급기야 김근태(金槿泰) 의장이 노 대통령의 회동 제의를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당ㆍ청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탈당 불사 및 임기 단축 언급은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푸념의 연장선인지, 아니면 실제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나는 시작부터 레임덕이었다"(2005년 7월 한인회장단 초청 다과회)는 대통령 자신의 자조와 여야의 레임덕 공세를 무색하게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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