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배성민기자][벽산건설, 張펀드와 중앙극장 두고 설전…가드랜드, 두산4세 복귀 풍경]
지난 23일은 전체 상장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77개사가 일제히 주주총회를 연 주총의 날이었다. 기업들에게 주주총회는 묵은 해를 결산하고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를 갖는다. 주총이 큰 마찰없이, 부담스런 주목없이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든 기업의 소망이지만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있다.
'주총의 날' 벽산건설과 가드랜드는 코스피과 코스닥 시장에서 나란히 주목을 끌었다. 이들 기업은 각각 재계 원로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 연임안과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의 가드랜드 대표 선임안이 관심을 끌었다. 장하성펀드와 두산그룹판 형제의 난, 분식 논란, 두산그룹 총수 일가 복귀 등 최근 시장의 관심사가 그대로 녹아든 경우였다.
#벽산건설-장펀드, 중앙극장 입씨름 이유는
장하성펀드는 주주로서 발언권을 이용해 벽산건설과 계열사의 내부거래 부당성, 이익 환원, 부동산 투자의 적절성 등에 대해 맹공을 펼쳤다. 장하성펀드가 내놓은 주총 안건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결은 김희철 회장의 이사 연임안으로 구체화됐다. 김희철 회장이 내부거래의 당사자이므로 연임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 장하성펀드의 반대 이유였다.
벽산건설의 주식 52%를 갖고 있는 인희(건자재.부동산 개발회사)가 벽산건설과 거래를 하면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것이 공격근거였다. 인희로부터 명동 중앙극장을 사들여 뚜렷한 개발에 나서지 않은 것도 부당거래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벽산건설은 주총 답변과 사후 설명을 통해 인희와 벽산건설의 원자재 거래는 수십년간 이어져왔고 다른 건설사 내부거래의 이윤율과 견주어 봤을때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맞받았다. 벽산건설의 '서운함'은 중앙극장 문제에 있어 절정을 이뤘다. 중앙극장은 본래 벽산에게는 젖줄과 같은 곳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벽산그룹의 효시는 본래 동양흥산이라는 영화배급업과 극장업을 겸하던 무역회사였다. 1950년대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이던 시절에 벽산그룹은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불렸다. 현재의 ㈜벽산을 일군 것도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을 팔고 나서였다.
주력업종 변경, IMF위기와 구조조정기의 험로를 거치면서 중앙극장을 제외하고는 벽산그룹의 극장재벌로서의 위용은 사라졌고 그룹이라기보다는 건설 전문업체로 위상도 바뀌었다. 벽산건설은 회사가 어려울 때 인희가 지급보증, 부동산 지원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어려움을 함께 했다고 밝혔다. 중앙극장 부지를 인수한 것은 개발가치가 있어서였고 최근 명동 고가도로 철거 등으로 땅값도 급등해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개발이 늦춰지는 것은 합동 개발을 위한 정지작업 때문이라고도 해명했다. 중앙극장이 CJ CGV, 메가박스 등 씨네플렉스에 밀려난 것처럼 영화로 '꿈의 공장'을 일구던 기업은 주주 자본주의 앞에 왜소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두산 4세의 인생유전...가드랜드와 두산그룹사 주총
두산그룹에게 있어서 지난 2005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박승직상점 이래 한국 최고(最故)의 회사로 우애 경영을 강조하던 그룹이 그해 7월 형제간 경영권 이양 과정에서 투서와 상호 비방전으로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분식과 회사자금 횡령 등 비리로 전현직 그룹 총수가 나란히 법정에 섰고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로서는 부정적 고리를 끊어내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두산은 식품,주류 중심이던 그룹 체제를 중공업 전문기업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복잡한 순환출자 등으로 발걸음은 제한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분식 해소, 전문 경영인 체제 강화 등 외부의 압력이 작용했고 그룹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해 성과를 이뤄냈다. 그룹의 지주사격인 두산은 지난 2005년 7월과 비교하면 주가가 6배 이상 올라있다.
두산그룹이 바뀐 것처럼 총수 일가도 큰 변화를 겪었다. 박용오 전 회장 일가는 그룹에서 사실상 퇴출됐고 아들들도 경영 일선(전신전자, 두산산업개발 등)에서 일제히 물러났다. 절치부심 속에 박용오 전 회장의 2남인 중원씨는 가드랜드(뉴월코프로 사명 변경 예정)라는 코스닥사 CEO로 지난 23일 복귀했다. 취약한 지분구조(보유 지분 3.16%)로 인해 황금낙하산(적대적 인수합병(M&A) 방지책으로 인수대상기업의 CEO가 M&A로 임기전에 사임하게 될 경우 거액의 퇴직금, 저가의 스톡옵션 등을 받을 권리를 기재, 기업의 인수비용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다소 변칙적인 방법도 사용했다. 전 두산 사장을 역임한 최종인 클라크머터리얼핸들링아시아 대표이사와 이재혁 전남일보 이사(조선내화 창업자 3세)의 힘도 빌릴 예정이다.
박 대표는 "지난 2년간 많은 것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새로운 길을 열게하는 준비기간이었다"고 복귀 소감을 밝혔다.
박 대표가 가까스로 복귀를 했다면 사촌형제들과 숙부들은 또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작은아버지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속에 두산중공업 등의 주총을 통해 그룹 전면에 복귀했고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박용곤 명예회장 장남)은 그룹 4세 중에서는 유일하게 그룹사 등기임원이 됐다. 또다른 사촌 형제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박용성 회장 아들) 등도 그룹사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며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다.
박중원씨 대표 등 박용오 전 회장 일가가 2년여 동안 그룹 바깥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다면 다른 사촌들은 그룹 울타리 안에서 차분히 복귀를 모색했고 실천에 옮긴 셈이다. 이래저래 올해 3월 주총은 지난 2005년 7월 만큼이나 두산 일가에게 의미깊은 날들로 기억될 법 하다.
배성민기자 ba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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