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27일 "대기업집단이 3세, 4세 체제로 가도 잘 할 것인지를 왜 국민이 걱정해야 하나"라고 묻고 "주주들이 이를 결정할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작동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이날 저녁 서울대에서 가진 세계경제 최고전략과정 초청 강연에서
국내 대기업집단과 관련된 공정거래 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에 대해 "대기업집단의
창업주들은 탁월한 능력이 있었으나 2세 체제로 가면서 잘 하는 기업들만 살아남았
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작동된다면 주주들이 (그들에게) 경영을 못하게 하
거나 잘하게 하거나를 결정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면서 "합리적
인 기준으로 보면 많은 검토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이어 "요즘 윤리경영을 얘기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사실은 기본법도
못 지키는 경우가 많이 있고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윤리는 법보다
높은 기준이므로 그런 기업들은 위법행위를 하지 말고 기본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
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경제를 발전시킨 공은 대기업과 대규모 기업집단에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전제하고 "그런 대기업일수록 자기 컨트롤이 더 엄격해야 하며 기
업들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처럼 글로비스를 만
들어서 물량 몰아주기를 하면 못 클 기업이 어디 있느냐"면서 "적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국내에서 커나갈 수 있도록 대기업
들이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원가자료를 요구한 뒤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산정하지 않는 것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질타하고 "(납품단가는)
시장가격대로 주고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낸 것은 대기업집단 시스템의 장점이었
으나 각 개별산업에서 좋은 제품으로 경쟁하는 것이 기본"이라면서 "삼성의 전체 이
익중에서 삼성전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개별기업이고 어디를
집단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며 이 부분이 우리의 과제"
라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이어 "시장의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 개
별시장이 경쟁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문제에 주력할 방침"이라면서 "내년에는 각
산업별로 현장도 직접 방문하는 등 구체적인 산업분야에 깊이 들어가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남용행
위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 공정거래법 선진화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특히 불공정행위 개연성이 큰 공공사업자 30개사를 선정해 중점 감
시하고 케이블TV와 영화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쟁 취약분야의 불공
정거래 행위를 조사해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 에너지, 보건의료, 물류운송 등 5개 산업의 시장구조
와 정부규제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해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들의 이익을
제고할 수 있도록 경쟁원리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최근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한 2
0여 개사에 대해 현장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올해 서면실태 조사 대상을 9만 개까지
확대하고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조사를 통해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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