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비대위와 상임고문단이 27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만찬회동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다.
청와대가 여당 지도부와 한마디 협의 없이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했다는
것이 거부의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 회동을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자칫 정권 말기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금년말, 내년초 정계개편 논의 본격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당.청이
`마이웨이' 수순밟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인상마저 준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오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 당 비상대책위원 전원과 상임고문단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겠다는 뜻을 알려
왔지만, 김근태(金槿泰) 의장이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40여명을 불러서 현 정국상황과 관련해 토론하자고 하는데 제대로
토론이 되겠느냐. 일방적인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한 자리라면 안가는 것이 낫다
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지난주 초부터 4차례에 걸쳐 청와대측에 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효숙(全孝淑)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문제 처리를
진솔하게 협의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번번이 무시당했다는 것이 김 의장측의
설명이다.
한 고위 당직자는 "청와대가 뚜렷한 거부 이유도 없이 여당 의장의 요구를 뭉갰
다"고 표현했다.
당이 극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 상황에서 청와대측의 `정협' 제안이 나왔다. 이
당직자는 "당 의장 만나는 것은 무시하면서 야당쪽하고는 같이 협상하자는 것은
당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기류는 이날 김 의장의 공개 언급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김 의장은 "앞으로 당은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당정협의에는 응하지 않
겠다"며 "당이 국정운영을 최종 책임지는 만큼 정책방향을 정하는 것부터 당의 분명
한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 의장의 이 같은 언급은 최근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이라크 파병연장동의안,
부동산정책 등 주요현안을 둘러싼 당청간 불협화음을 여실히 반영한 것이라는 게
당측의 시각이다.
문제는 향후다. 여당과 청와대의 관계 악화는 예정된 수순일 수 있다. 범여권
정계개편 와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갈지 여부는 논의의 상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기국회 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청간 정
면충돌은 국정운영의 난기류로 이어질 수 있다.
당쪽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 지도부와 노 대통령간의 정례회동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이 제안을 청와대측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정례회동은 노
대통령의 당.정 분리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당측의 제안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청와대측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청간 이 같은 불신과 반목은 여권
내 분화를 촉진시키면서 정계개편 논의를 가속화 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
인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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