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출
자총액제한제도 개선안을 마련했으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대가 많아 결국 논의 자체가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에 따라 최근 합의된 정부의 완화된 출총제 개선안이 앞으로 그대로 입법화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이며, 앞으로도 이를 둘러싼 논의가 진통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총제 완화 무산되나
당정은 27일 오전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과 우제창 제3정조위원장, 권
오규 부총리겸 재경부장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출총제 관련 협의회를 열었으나 최근 마련된 정부안에 합의하는데 실패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천정배, 채수찬 의원 등은 정부안에서 도입하지 않기로 한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표명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같은 의견을 감안해 추후 당내 논의를 통해 입장을 정리
키로 함에 따라 최근 합의된 정부안이 그대로 입법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
되며, 이에 따라 출총제 개선 방안은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게 됐다.
정부는 지난 15일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출총제 적용대상 기준
을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2조원 이상 중핵기업으로 축소하는 한편 출자
한도도 현행 25%에서 40%로 완화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
이 상당수 제기돼 논란을 빚었으며, 출총제 적용 기준을 자산규모 3조원, 또는 5조
원 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등 입장이 다양했다.
정부는 순환출자 규제가 또 다른 규제로 인식될 수 있는 만큼 경기 활성화와 투
자 촉진을 위해 이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지 말고 최근 합의된 정부안을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정부합의안은 사전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사후규제를 강
화함으로써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우리가 당초 마련했던 안에서 한 발 물러
선 것이었다"면서 "입법화 과정에서 그대로 수용되기를 희망하지만 현 상태로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향후 열린우리당의 논의 과정에서 의견 조율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열린우리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도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이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도입 여부가 원점으로 돌아감에 따라 출총제 적용
대상인 중핵기업의 기준이나 출자한도 등의 세부 사항은 논의조차 못한 상태여서
향후 조속한 합의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뭐 했나...비난여론 비등
정부 합의안의 입법 가능성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당정은 그동안 논의만 무성하
게 했을 뿐 제대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공정위는 지난 7월부터 `시장경제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3개월간 대
규모기업집단시책 개선 방안을 논의해왔다.
이 TF는 매달 정기적인 모임과 회의를 갖고 출총제 개편안을 논의해왔으나 결국
뚜렷한 결론없이 지난달 활동을 마쳤고, 정부 부처간 이견으로 진통을 거듭하다 겨
우 마련된 개선안도 결국 처음부터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열린우리당에서도 출총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환상형 순환
출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지만 이를 통일된
당론으로 조율해 내는데 실패했다.
공정위는 일단 당내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입법 일정을 감안해 정
부입법으로 절차를 밟기 위한 준비를 내부적으로 진행해나갈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진통끝에 정부안은 마련됐으나 지금은 열린우리당내 의견이
갈라져 있어 사실상 우리의 손을 떠난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당내 의견조율과정에
서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출총제 개선안은 내년 2월 임시국회에 상정해 통과되면 4월부터 적용될 예정이
었다.
입법 과정에서 필요한 입법 예고 기간과 법제처 심사,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국
무회의 등의 일정에 최소한 40-60일 가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정부와 정치권이 출총제 개선안에 합의하지 못해 내년 2월 임시국
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현재의 출총제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최근 정부합의안 발표로 출총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재계
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향후 남아 있는 입법절차와 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마련한 안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출총제
완화를 환영했었으나 여당내에서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고 개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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