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1970∼8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서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던 서울대 학생이 `3전4기' 끝에 학사모를 쓰게 됐다.
23일 서울대에 따르면 1971년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던 양관수(57)씨는 그해 대통령선거 부정선거 규탄과 교련 반대 투쟁에 앞장서다 같은해 10월 제적과 동시에 강제 징집됐다.
3년 뒤 복학한 양씨는 1976년 유신헌법 철폐 시위를 이끌다 두 번째로 제적당했으며, 1979년에는 이른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을 주도하며 계엄령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이듬해 세 번째 제적 통지서를 받았다.
출소 후 민주화 운동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는 시책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됐던 양씨는 "중앙정보부에서 `유학비를 대 줄테니 남아메리카로 가라'고 제안해 왔으나 자비를 들여 아내가 있는 일본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세 차례나 쫓겨난 양씨가 다시 학교를 찾은 것은 재작년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복학의 길이 열린 덕분이다.
양씨는 작년까지 고려대 객원교수로 활동하다 성공회대로 자리를 옮겨 일본경제학을 가르치는 등 교수로서 활동함과 동시에 서울대에서는 졸업을 1년 남기고 돌아온 복학생으로서 공부하게 됐다.
양씨는 "당시는 독재 권력에 침묵하느냐 저항하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시대였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우리 나라의 발전도 없다고 생각해 저항에 앞장섰다"며 "복학해보니 서울대 캠퍼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곳이 돼 천지가 개벽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본으로 떠난 지 열흘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는 양씨.
그는 "사회복지학을 마저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시골에서 힘들게 키워 대학 보냈더니 만날 시위만 한다'며 애태웠던 부모님의 영전에 졸업장을 바치고 싶었던 것이 복학을 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zheng@yna.co.kr
(끝)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