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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때 소문난 날라리였습니다. 앞으로도 간혹 고등학교 시절의
얘기를 하게 될 겁니다. 그 때마다 "아! 박형철은 날라리라 그랬지?" 하시며
글을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지금도 그러냐고요? ^^ 아닙니다.
다만, 철이 좀 덜 들었을 뿐...


[ 만화가게 할머니 ]


한달에 삼만원의 용돈으로는 오락실,당구장,간혹 나이트,데이트(?)자금
등을 충당하기는 빠듯한 입장에서 제 악동 친구들과 저는 모종의 계략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앞의 만화가게를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만화가게 주인이 ´할머니´란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죠.

만화방 주인이셨던 할머니는 눈이 어두우셔서 백원짜리를 구분하시는 방법이
백원짜리 옆면에 홈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색깔을 보고 구분하시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10원짜리 동전의 옆면을 칼로 긁어 홈을 낸 다음,
백원짜리 ´광약´을 사서 문지르면 색깔이 하얗게 변하게 됩니다. 위조주화의
가장 초기적인 범죄모델이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만화방을 찾았습니다.

나: (만화책 몇 권하고 과자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준비해온 백원짜리를 냅니다)

할머니:(대충 훑어보시며 돈통에 넣으십니다)

의외로 작전이 성공한 저희들은 자신감을 얻어서 자주 이 방법을 이용하곤
했지요. 할머니를 속인 다음 날 만화방을 가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원성어린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혀를 끌끌 차시며) 원, 우라질 놈들 같으니,
눈 어두운 할미를 속여서 뭐하겠다고...

백원짜리로 위장한 십원짜리는 몇시간 지나면 색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지만
할머니는 저희들이 속이는 것도 모르고 계속 속으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를 속이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할머니께 백원짜리를 위장한 십원짜리를 내밀었습니다.
순간, 할머니께서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아직도 십원짜리로 책을 보려는게야?

깜짝놀란 친구들은 후다닥 도망을 쳤지만 의외로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이상하게스리 저는 도망을 치지 못했습니다.

나: 할머니...

할머니: 원 싱거운 녀석들 같으니라구. 도망치고 말거면서 할미를
왜 속이누? 그래도 잘못은 했다고 생각은 하나보지?

나: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할미가 끝까지 속아줬으면 좋았겠지? 욘석아?

제 머리속에는 어머니의 화난 얼굴과 선생님의 몽둥이가 커다랗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나: 할머니,제발 집과 학교에는 알리지 말아주세요. 제가 친구들과
지금까지 할머니 속였던 돈들 다 물어드릴께요.

할머니: 음...

나: 학생증도 맡겨 놓을테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네? 할머니이...

할머니: 요놈아! 할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네놈들이 범인인 것을 말야.
언제나 이놈들이 할미에게 이실직고를 하나 했더니 할미가 알아채지
않았으면 더 나쁜짓을 할 놈들 이었어.

나: 정말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할머니: 학생들이 돈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솔직히 말하고 할미한테
책 좀 보여주세요 하면 이 할미가 야속하게 거절할 것 같더냐?
이 할미는 돈 벌라고 이거 하는 거 아니다.

그 이후로 할머니의 연설은 무려 1시간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용서해 주시는 쪽으로 흘렀기에 안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학생은 왜 도망치지 않았어?

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걸 듣고는...

할머니: 착하구먼. 이제부터 몇일동안 학교 마치면 할미 가게에 와서
할미 좀 도울 수 있어? 일주일만 도와주면 용서해 주지.

이렇게 할머니께 용서를 받을 수 있었고 학생증도 보지 않으시고 절
믿어주신 할머니가 너무도 고마워서 한달이 넘게 할머니를 도와드렸습니다.
청소도, 책 정리도, 과자와 음료수 박스를 나르는 일들도...

무엇보다, 제가 얻을 수 있었던 건 할머니와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이쁘다고 하시며 자주 쓰다듬어 주셨고 손자같다고 귀여워
해 주셨습니다.

할머니와 약속한 한달이 지나갈 즈음, 학교를 마치고 달려간 만화방엔
할머니 대신 젊어보이는 여자분이 계셨습니다.

나: 어? 할머니는요?

아줌마: 아,어머니가 자주 말씀하시던 학생이구나?
할머니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나: 많이 아프세요?

아줌마: 응. 조금 그러셔...

병원을 물어서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나: 할머니! 많이 아프세요?

할머니: 아냐 아냐. 여긴 어떻게 다 왔어?

나: 네에, 아줌마가 가르쳐 주셔서요.

결국, 약속한 한달을 다 채우고 한동안 만화방과 할머니를 잊고 지냈던
저는 두어달이 지난 어느 날 만화방을 찾았습니다.

그 만화방에는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고 어느 아저씨가 계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만화방의 주인은
이미 할머니가 아니셨고 할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씀을 들었을 뿐.

맛있게 라면을 끓여주시며 "많이 먹어. 그저 젊을 땐 뭐든 많이 먹는거야..."
하시던 할머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손주녀석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주시던 할머니를 볼 때면 돌아가신 저희 외할머니를 떠올리곤 했었습니다.
비록, 먼 기억속의 얘기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제가 경험했던 소중한 추억이며
살아가는 동안 잊지못할 기억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를 속였던 것이 못내 후회도 되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면 할머니와의
소중한 인연은 없었을 거라 생각하고, 할머니의 넓은 이해심이 아니었다면
소중했던 기억도 머리속에 남지 않았을 거라 생각 합니다.

어르신들이 앞에 서 계셔도 무시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과 어르신들의 행동에
눈쌀을 찌푸리며 어르신들에게 대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올망졸망 머리속에
주저앉아있는 오래된 얘기를 꺼내보았습니다.

어르신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가 노인이 되어있을 때 쯤, 우리도 존경 받고 존중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감성열전(닉네임)

출처:다요기 http://www.dayo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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