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3일 예루살렘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첫 공식회담을 가져 양측간의 오랜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회담은 올해 초 팔레스타인 총선을 통해 집권한 하마스가 내각을 장악한 후
막혀 있던 양측 지도부 간의 대화 통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평화정착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회담 성격을 하마스라는 `공동의 적'을 제압하기 위한 `적과의 동침'으
로 볼 수 있어 낙관적인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압바스-올메르트 회담 성사 배경 = 올해 초 뇌졸중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아리
엘 샤론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지난 5월 공식 취임한 올메르트 총리는 원래 압바스
수반을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공식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대해 온건 노선을 견지하는 압바스 수반의 파타당이 지난 1월의 팔
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에 진 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압바스 수반은 올메르트 총리에게 지속적으로 대화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번번이 묵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압바스 수반이 하마스 내각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수반
선거와 총선을 앞당겨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대립하는 압바스 수반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줘야 할 필요
성이 커진 것이다.
압바스 수반은 지난 18일 올메르트 총리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올메
르트 총리는 그날 예루살렘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 자리
를 빌려 "우리는 서로 필요하다"며 압바스 수반의 요구에 화답했다.
압바스 수반과 올메르트 총리는 첫 공식회담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진정한 파
트너"로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언급했다.
파타당과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항해 전략적인 제휴를 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
으로 피력한 것이다.
◇향후 전망 =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과 양보 없는 싸움을 해온 하마스 내
각 출범 후 단행된 이스라엘과 서방권의 봉쇄 제재로 생활여건이 악화하면서 이스라
엘과의 화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소가 압바스 수반이 조기 선거 계획을 발표한 직후 내
놓은 여론 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팔레스타인인 1천27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차기 수반 선거에 압바
스 수반과 하마스 내각을 이끌고 있는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가 나설 경우 누구를 지
지하겠느냐는 물음에 압바스 수반을 찍겠다는 응답자가 46%를 차지한 반면 하니야
총리를 밀겠다는 응답자는 45%에 그쳐 온건파인 압바스 수반의 지지율이 근소한 차
이긴 하지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향후 총선에서 파타당과 하마스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자가 각각 42%와 36%를
기록해 지난 9월에 비해 파타당 지지율은 1% 포인트 높아지고 하마스 지지율은 2%
포인트 낮아져 양측의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함께 응답자
의 61%가 조기 선거를 지지한 반면 반대한 사람은 37%에 불과해 조기 선거 지지 여
론이 우세했다.
이는 압바스 수반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원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동인이 됐을 것
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압바스 수반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줄 경우 조기 선거에서 파타당
이 하마스를 몰아내고 자치정부를 재장악할 공산이 커졌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의도가 그대로 먹혀들어가기에는 장애물이 적지 않은 상황이
다.
조기 선거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선거 거부 입장을 밝힌 하마스는 압바스 수반에
대한 정치공세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압바스 수반을 중심으로 뭉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포로 교환 석방이나 점령지 반환 문제 같은 큰 쟁점에서 양보해야 하지만 그럴 가능
성이 낮다.
우선 지난 6월25일 하마스 계열 무장조직 등에 포로로 잡힌 길라드 샬리트 상병
과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들을 교환 석방하는 문제의 경우 압바스
수반에게는 주도적으로 해결할 힘이 없다.
또 향후 평화협상 과정의 핵심 의제가 될 수 밖에 없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
르단강 서안 점령지 반환이나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문제는 협상이 진행될 수록 압바스 수반의 입지를 좁힐 여지가 많다.
분리장벽 건설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 중 전략적으로 중요한 10% 정도의
땅을 자국 영토로 영구 귀속시키려는 이스라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온전하게 점령지
를 돌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주변국으로 피신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도 이스라엘-팔
레스타인 지역의 인구분포를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로서는 허용하기가 어
려운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선거를 앞두고 하마스 내각 출범을 계기로 이
전을 동결한 자치정부의 세수 일부를 압바스 수반 측에 제공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만 양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메르트 총리가 23일 회담에서 자치정부에 대한 세수 이전 동결 분 약 5억달러
중 1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이 구체적으로 꼽을 수 있는 이날 회담의 유일
한 성과인 점은 그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압바스 수반을 통해 자치정부 공무원들에게 수개월 간 밀린 임금이 지급
돼 향후 선거에서 파타당이 유리한 입장에 서더라도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것처럼 하
마스 내각 붕괴효과를 가져올 지는 미지수이다.
지속 가능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하마스 지지세력들의 저항이 만만
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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