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DA '법대로+정치협상 믹스' 가능할까 = 이같은 이번 회담의 결과에 비춰
최대 관심은 BDA 해법에 쏠려 있다.
북한의 김 부상이 이번에 미국 측 제안에 답할 만큼 재량권을 갖지 못하고 회담
에 나왔다는 평가가 주류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금융제재 해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1월 중순 뉴욕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은 2차 BDA 실무회의에서 대니얼
글래이저 미국 재무부 부차관보와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가 어떻게 해법을 찾을
지 주목된다.
해법이 조기에 나올지 여부는 이번 베이징 양자 협의에서 어느 정도까지 공감대
를 형성했는지에 달려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 협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공개
되지 않고 있으며 관측만 무성한 상황이다.
다만 양측의 기존 스탠스에 비춰 미국은 BDA내 북한 계좌가 위폐제조 및 유통
등 각종 불법행위에 관여된 혐의가 있어 법대로 `돈세탁우려대상'으로 지목한 만
큼 정치적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종전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북한의 경우 금융제재는 대북 적대시정책의 집중적 표현이라며 즉각
해제를 요구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협의 결과에 대한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글래이저 부차관보는 "사무적이고 유익했다"고 평가하고 "BDA 실무회의가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속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오광철 총재는 함구했지만 김 부상은 "1월 중순에 실무그룹을 가동시키는 문제
에 대해 논의됐다"며 "실질적 논의가 깊이있게 진행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부정적이거나 감정 섞인 반응은 찾아볼 수 없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앞으로 이번 양자협의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
대를 이룬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1월에 뉴욕이나 베이징에서 열릴 양자협의에서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지에 대한 논의가 집중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와 관련, 이미 서로의 의중을 깊이 있게 파악한 만큼 미국의 `법대로 해결'와
북한의 `정치적 해결'을 놓고 절충이 시도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해결 과정과 절차는 `법대로'이지만 최종 결론에는 `정치적 해법'이 녹아들어가
는 방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이런 해법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 우선 2천400만달러로 알려진 동결자금 가운데
북한의 불법 행위에 연루된 자금을 가려내는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BDA 거래와 무관치 않아 보이는 무역은행 실무자들이 북한 대표단에 참여했다는
점은 이 같은 가능성을 점치게 만들고 있다. 금융 전문가인 만큼 계좌 내역을 꿰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이런 과정은 결국 미국이 그동안 수기로 된 엄청난 분량의 BDA 자료를 전산화하
고 분석한 바탕 위에 일종의 `참고인 조사'가 본격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조사 종결을 위한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미국이 BDA의 돈세탁 혐의에 대한 조사를 우선 일단락지은 뒤 그 결
과를 통보하면 마카오 당국은 불법행위와 무관하다고 판단되는 북한 자금은 동결을
풀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불법 혐의가 사실로 입증될 경우에는 정치적 해법을 통해 풀어나가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는 대안도 거론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봐도 북한 체제의 특성상 미국이 피의자를 특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법인이나 사인에 대한 사법처리는 `기소 유예'를 통해 넘어가는 게 적절하다는
시각인 셈이다.
이는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법이 베푸는 관용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이
견지해온 `법대로' 원칙도 지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같은 실무적 과정 외에도 필요한 것은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재발방지 약속이 꼽히고 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자금세탁방지기구(APG) 같은 국제기구에 북한이 가입하는 형
식을 빌려 우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미국은 실제로 지
난 3월 뉴욕에서 이뤄진 북미 협의에서 북한에 APG 가입을 권유한 바 있다.
이같은 해법이 추진될 경우 6자회담 프로세스에도 상승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BDA와 북핵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게 전반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북핵과 BDA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내심 BDA를 통
해 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감지된 점은 BDA 해법의 가닥이 잡힐 경우 6
자회담의 초기 행동과 연결될 가능성을 예견케 만들고 있다.
실제 김계관 부상이 22일 "미국측은 금융제재를 해제하는 대신에 우리 핵활동
중단을 요구한다"고 한 것도 미국의 움직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한발짝의 양
보도 없이 계속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 한다면 북핵 문제는 상호 `강 대 강' 조
치의 반복을 불러오면서 더 꼬일 개연성이 높다.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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