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도 러' 가스값 `일방적' 인상에 결국 굴복
잃었던 옛 소련권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에너지 압박' 이라는 새로운 정책 무기로 부활시키려는 러시아의 정책이 일단 성공하는 모습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 빅토르유셴코 우크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2005년 3월 이후 1년 9개월만에 이뤄진 푸틴의 이번 키예프 방문은 그동안 틀어졌던 양국 관계가 일정하게 복원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2004년 우크라 대선에서 러시아는 친 서방노선을 표방한 유센코 후보 대신 야누코비치 후보를 지원했으며, 이 때문에 유센코 대통령의 집권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관계가 틀어졌고, 우크라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해 러시아를 자극했다. 이에 러시아는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을 통해 지난 1월 그전까지 1천㎥당 95달러였던 대(對)우크라 천연가스 공급 가격을 230달러로 인상한다고 밝히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이는 우크라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으로 비쳐졌다. 유셴코는 강력 반발하는 한편 서방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신들도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할까 우려한 서유럽국가들은 이를 외면했고, 우크라의 유럽연합(EU) 가입 역시 요원해 보였다.
결국 압제의 옛 종주국 러시아로부터 벗어나려는 우크라의 강한 원심력은 `에너지 무기'라는 강력한 구심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 8월 유센코 대통령이 상대후보였던 친 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기용했다. 이를 계기로 EU와 NATO 가입 시도도 유보했다.
지난 가을 야누코비치 우크라 총리와 미하일 프라드코프 러시아 총리 간의 키예프 회담에서 러시아가 내년에 1천㎥당 130달러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관계 개선의 물꼬가 터진 이후 양국 당국의 막후 노력을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양국 관계를 효율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유셴코 대통령은 푸틴의 방문이 양국관계 발전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회담 후 푸틴 대통령은 "매우 건설적이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모든 게 실용적이고 실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이번 푸틴의 방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새로운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양국 간의 갈등은 완전 해소된 것이 아니고 일단 잠복하는 모습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가스공급과 관련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계약을 해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아 가스전쟁은 완전히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유셴코 대통령은 "(회담에서) `기술적인 문제'는 논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자국의 국영 가즈프롬이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해 이를 또다른 국영기업 `로스우크레네르고(이하 로스우크)'에 판매, 이 회사가 우크라이나에 공급토록 하고 있다. 지난 9월 러시아는 투르크멘에서 수입하는 가스 가격을 1천㎥당 65달러에서 100달러로 올리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근거로 푸틴 대통령은 이번 키예프 방문에서 대 우크라이나 가스가격 인상은 러시아 책임이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이 수출가격을 인상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對)우크라 가스 공급과 관련해 러시아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3일자 호에서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 사실상 가즈프롬의 영향력 하에 있는 로스우크의 역할이 의문시된다며 러시아가 가스공급과 관련해 투명한 정책을 표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말하자면 러시아가 이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언제든지 또다시 우크라의 목을 죌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가즈프롬은 그루지야 정부와 내년 한 해에 총 18억㎥의 가스를 1천㎥당 235달러씩에 공급하는 계약에 서명했다고 FT는 전했다. 종전 공급 가격은 1천㎥당 110달러로 새계약가는 2배 이상 인상된 것이다.
지난 2004년 미하일 사카쉬빌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루지야와 러시아간 관계가 나빠졌고 특히 몇 개월 전 그루지야가 자국내 러시아 정보 장교를 간첩혐의로 체포하면서 크게 악화됐다.
사실상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가스공급 가격 인상 요구가 시작되자 그루지야는 거세게 비난하며 반발해왔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 요구를 전면 수용함으로써 양국 간 갈등 역시 러시아 측의 승리 속에 일단락됐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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