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쏠림 현상 심했다"..'악의 축' 비난은 억울
여.수신 중심의 금융 패러다임은 끝나..블루오션 찾아 해외로
내년은 LG카드와 시너지 창출이 급선무
"우리가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팔짱끼고 가만히 있었으면 (부동산 시장이) 달라졌을까요"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웬만해선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는다. 누구와 대화 할 때도 할 말은 하지만 좀처럼 각을 세우는 법이 없다. `온화한 카리스마' `맏형 같은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신 행장에게 `청와대가 금융이 부동산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악의 축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대답 대신 반문이 돌아왔다.
20일 연합뉴스와의 신년 인터뷰 자리에서다.
물론 금융이 부동산 광풍의 주범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성할 대목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은행들이 뭐가 좀 된다 싶으면 달려들어서 제 살 깎기 경쟁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쏠림현상(herd behavior)이 심했다"고 지적했다.
또 "대출시장에서 86%를 차지하고 있는 1금융권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감한 시기에는 정부정책에 맞춰 나가는 게 좋다"고 몸을 낮췄다.
신한은행은 최근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신규 취급을 억제했고 금리도 대폭 올렸다. 이어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조치가 뒤따랐다.
신 행장은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틈 날 때마다 "은행권 2위는 신한은행이 아닌 우리은행"이라고 강조하는데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언제까지 좁은 국내시장에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싸움에만 매몰될 것인가"라며 우회적으로 황 행장을 겨냥했다.
또 "금융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과거처럼 여.수신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두 은행을 비교할 때는 좀 더 냉정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일례로 투자상품 판매 규모를 보면 10월말 기준으로 신한은행은 16조원으로, 우리은행(10조원)보다 훨씬 크고 3분기 당기순이익 규모와 자산총계 역시 신한은행이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신한지주가 LG카드를 인수하면 지주회사 전체적으로 수익규모나 자산규모 측면에서 1위 사업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확보하게 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신 행장은 올 한해 동안 `블루오션'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녔다. 직원들에게는 `블루오션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신 행장이 말하는 블루오션은 해외시장 개척이다. 지난 13일에는 인도 뉴델리 지점 개설차 현지에 다녀왔다.
"인도 재무장관을 만났는데, 꿈에 부풀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낮 시간에 현지 삼성전자, LG전자를 방문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까 베트남처럼 엄청난 개발붐이 불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재원들이 집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집값도 올라가고 있었죠. 한가지 단점이라면 인.허가 과정이 매우 느리고 까다롭다는 점인데, 인도 측에서 규제도 점차 완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신 행장은 1996년 개설한 뭄바이 지점과 이번 뉴델리 지점에 이어 인도에 세 번째 지점을 낼 계획이다.
인도 이외에도 은행 인수합병(M&A)이나 지분투자 방식으로 해외 각국에 진출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화제를 다시 국내로 돌려 혹시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이 있는지도 물어봤다.
"먹은 거 소화부터 시키고 난 다음에 얘기해야죠" 외환은행 인수보다는 LG카드 인수 이후 그룹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급선무라는 말이다.
최근 기업개선작업이 추진되고 있는 팬택계열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신한은행은 338억원 상당의 팬택계열 채권을 갖고 있다.
"일단 위기는 넘길 수 있도록 지원해야죠. 그러나 팬택계열이 금융지원만 하면 과연 살아날 수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자수성가한 개인 사주들은 모든 것을 단독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사가 커지면 의사결정은 반드시 시스템적으로 해야 하는데 말이죠. 박병엽 부회장은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이지만, 투자를 잘못했다든가 이런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내년에 외환위기 10년을 앞둔 소회도 밝혔다.
신 행장은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들 가운데는 외환위기를 또다시 겪은 국가도 있다"면서 "최근 엔.달러 환율이 내려가 수출기업들이 어려워져 있는데, 전자.자동차 연관 산업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금융지원을 잘 해서 이번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상훈 행장 = 신 행장은 지난 4월 신한-조흥 통합 은행장으로 선임된 이후 약 100일간 직원들과 아침 또는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신한은행 전체 직원 1만1천여명중 4분의1을 직접 만났다.
바쁜 와중에도 직원들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고 이른바 '야자타임'을 즐기는 덕분에 회식자리의 분위기 메이커로 전해진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후배들 사이에서는 `큰 형님'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산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신 행장은 82년 신한은행의 창립 멤버로 합류 한 뒤 일본 오사카(大阪) 지점장, 자금부장, 영업부장 등 은행의 중심 부서에만 배치돼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은행이 매년 연말에 개최하는 종합 업무평가대회에서 대상을 영동지점장과 본점 영업부장 시절에 두번이나 받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늘 처음처럼'이라는 좌우명처럼 직장생활을 하면서 근 30년째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영과 조깅을 하고 주말이면 등산에 나서 후배들을 앞지르는 정력가로도 알려져 있다.
통합 은행 출범 이후 `열린경영, 현장경영'을 모토로 내세워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누비며 거래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러 다녔다.
전북 옥구 출생으로 군산상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신한지주 상무를 거쳐 2003년 신한은행장에 올랐다. 부인 이근숙 씨의 사이에 1남 1녀.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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