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발생한 납치협박 사기 사건에 중국계 폭력 조직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우리나라가 중국계 폭력 조직의 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범행을 수사하던 도중 입수
한 차명통장 가운데 일부가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국세청 직원 등을 사칭해 계좌
이체로 거액을 송금받은 세금환급 사기에 이용됐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은 당시 세금환급 사기 사건의 중국인 피의자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중국계
폭력조직 삼합회(三合會) 계열 `신이안파'의 조직원'이라고 진술했던 점으로 미뤄
삼합회가 납치협박 사기 사건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경찰은 이번 사건이 세금환급 사기 사건의 수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중국에 있는 조직 상부의 지시에 따라 현지에서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통해 피해자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고, 한국에 파견된 조직원들이 미리 준
비해둔 차명계좌에 피해자가 돈을 입금하면 곧바로 인출하는 등 범죄 수법이 `닮은
꼴'이라는 것.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세금환급 사기 사건에서는 중국인 조직원들이 직
접 한국에 있는 은행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계좌를 개설한 것과 달리 이번 사건에서
는 중국인 조직원들이 다른 한국인을 통해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가이드에게 접근, 그를 통해 통장
명의를 빌려줄 한국인들을 계좌 1개당 7만원씩 주고 확보해 총 27개의 차명계좌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에 대해 "세금환급 사기 사건으로 시중 은행들이 중국계 손님의 계좌
개설 절차를 까다롭게 하자 한국인을 통해 차명계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
다.
결국 중국계 폭력 조직이 방대한 조직망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국세청ㆍ국민연
금관리공단 직원을 사칭한 세금ㆍ보험금 환급 사기 행각을 벌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
게 되자 납치협박 사기로 전환한 것이라는 게 경찰이 그린 큰 밑그림이다.
한편 출입국ㆍ통신ㆍ금융 거래 등이 폭넓게 허용된 상황에서 이처럼 중국계 범
죄 단체의 `원격 범죄'가 빈발하자 이를 방지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이 자칫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데다 외국 범죄 단체의
경우 수사와 검거는 물론 사건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어 애를 먹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폴이나 현지 공안당국에 수사공조를 요청한다고 해도 그들
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수사에 임할지는 알 수 없다"며 "국제 주요 범죄자로 분류
되는 `적색 수배자'인 경우에도 해당 국가의 공안당국이나 인터폴이 이를 우리측에
알릴 의무가 없어 범죄 목적으로 이뤄지는 입국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을 비롯한 정부 기관들이 국민들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한편 국
민들 스스로 사기성이 짙은 전화나 협박 전화가 걸려오면 의심하고 신고하는 자세를
갖는게 피해 예방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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